[중견가전 리포트]삼성출신 박재순 쿠첸 대표의 내실다지기④코로나 여파 해외거래선 공격확보 난항…비용 절감, '멀티쿠커'로 돌파구 마련
손현지 기자공개 2021-11-11 07:31:12
[편집자주]
중견 가전업체들의 입지가 한층 넓어졌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집콕열풍', '보복소비'로 이전에 없던 고가의 가전까지 수요가 늘어났다. e커머스 발전으로 온라인 매출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렌털, 홈쇼핑, 해외 진출 등 신수익원을 위한 비즈니스 기회들도 속속 생겨난다. 소비트렌드 변화에 맞닥뜨린 중견 가전업체들의 경영전략 면면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11월 05일 07: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9년 말, 이동건 부방 회장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주요 자회사인 쿠첸의 경영난이 심화되자 수장직에 본인의 아들인 이대희 대표 대신 전문경영인을 기용키로 했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인물은 바로 삼성전자 출신 박재순 대표(사진)이다.박 대표는 생활가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유럽과 미국, 중국시장에 강한 해외통으로 평가된다.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오스트리아 빈 지점장을 포함해 캐나다법인장, 미국 CE부문장, 한국총괄, 중국 총괄 생활가전 전략 마케팅 팀장 등을 역임했다. 그외에도 인사, 영업전략마케팅 등을 경험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 회장이 쿠첸의 성장동력을 해외 채널에서 찾으려고 했다. 박 대표를 전문 경영인으로 선임한 이유다. 쿠첸은 해외 매출이 전체의 5%에 불과할 정도로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다. 박 대표는 30년 넘게 삼성전자에 몸담으며 해외시장 개척, 수출, 글로벌 조직 운영업무에 특화됐다.
쿠첸 관계자는 "주식이 쌀이 아닌 유럽과 북미 등의 지역도 주요 타깃 국가"라면서 "현지에선 밥을 짓지 않지만, 찜요리 등을 할 때 전기밥솥 사용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쿠첸의 구원투수인 박 대표에게 부방의 주식도 7만4927주(0.12%)도 부여했다. 외부 인재를 통한 쇄신에 대한 기대감을 의미한다. 박 대표는 작년 1월부터 쿠첸에 합류해 개발부터 구매, 제조, 판매 등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쿠첸의 외부 경영인 기용 실험은 내부적으로 위기 의식이 상당했다는 방증이다. 쿠첸의 연 매출 70%는 밥솥에 쏠려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전기밥솥 시장은 외식문화 확산, 간편식(HMR) 확대로 더이상 성장동력을 찾을 수 없다. 경쟁자이자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쿠쿠전자 역시 일찍이 가전 렌탈비즈니스를 시작해 밥솥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박 대표는 취임 후 내실다지기에 주력했다. 이 회장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당장의 성과를 인정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작정 해외 판로를 넓히기엔 리스크가 많았다. 작년 초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세계가 경색됐을 때여서 공격적으로 해외 신규영업을 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현지에서 기술력만으로 승산을 볼 처지도 아니었다. 자신있게 내세울 만한 제품라인업도 없었다. 국내에서의 입지 조차 불확실했던 만큼 내실을 다지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작년 한해동안 쿠첸은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취임 당시 쿠첸의 곳간은 그야말로 텅빈 상태였다. 2018~2019년 쿠첸의 영업력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나빠졌고 현금및현금성자산은 2017년 말 84억원에서 2019년 말 2억원대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자 비용부담을 감소시키려 단기차입금(53억원) 규모도 축소했다. 법인세 비용도 기존 20억원 수준에서 작년에는 1억원대까지 줄였다. 유형자산도 처분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정리했다. 천안 성성동 공장을 부동산개발업체인 제이비스에 505억원에 매각키로 결정하며 계약금과 중도금을 회수했다. 작년 말 가용가능 현금 및현 금성자산은 138억원대로 늘어났다.
이와 병행해 쿠첸만의 기술 경쟁력 찾기에도 매진했다. 과거 히트작들을 보면 유독 기술력이 부각된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2010년 일명 효리밥솥으로 불렸던 LX밥솥과 2016년 IR밥솥의 성공 원동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쿠첸만의 인덕션 히팅(IH)열원 기술과 압력·온도제어·모터 기술력 등이다.
박 대표는 위의 강점 기술들을 모아 작년 7월 '플렉스쿡(FlexCuc)'을 출시했다. 플렉스쿡은 총 136개 요리 레시피를 탑재한 스마트 멀티쿠커다. 눈여겨볼 만한 건 '멀티쿠커'다. 최근 멀티쿠커는 식기세척기, 건조기, 로봇청소기와 함께 가사 노동을 줄여주는 가전제품 라인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플렉스쿡의 국내 판매량은 올해 9월 기준 출시 1년 여 만에 568% 증가한 상태다.
멀티쿠커의 큰그림은 밥 문화가 없는 해외까지 공략하는 전략이다. 국내 흥행을 발판삼아 해외거래선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처음 주목한 곳은 러시아다. 현지화 전략에 맞게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제작했다. 마케팅도 홈페이지, 유튜브, 인스타그램 채널 등 온라인 채널을 적극 활용했다. 결국 지난달 러시아와 85만달러 선적규모의 플렉스쿡 수출계약을 맺는 결실을 냈다.
향후 인근 유럽으로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국가별 사정에 맞게 제품을 변형시켜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경우 현지엔 메이디사와 합작한 조인트벤처(광동메이디쿠첸유한공사)가 있지만 한한령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쿠첸 관계자는 "멀티쿠커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을 탑재할 계획"이라며 "스마트폰을 활용해 가정 내 조리기기를 제어할 수 있거나, 개인별 취향을 분석해 식단을 추천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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