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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의 비극’ 두산건설, 균열부터 매각 초읽기까지 일산 위브더제니스 미분양, 그룹 전체로 부실 확대…10여년간 2조 이상 수혈

고진영 기자공개 2021-11-18 07:45:38

이 기사는 2021년 11월 15일 10: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매각 의지가 정말 있나.’ 시장에 의구심이 팽배할 정도로 두산건설을 쉽게 놓지 못했던 두산그룹이 마침내 미련을 떠나보낼 전망이다. 현재 신영증권, 큐캐피탈 등과의 매각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간 두산그룹은 채권단의 독촉에도 두산건설에 칼을 대는 데 다소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박정원 회장을 포함한 오너일가가 각별히 아끼던 계열사다보니 결단이 어려웠으리라는 평가다. 뼈아픈 이별의 불씨는 십여년 전 미분양에서 시작됐다.

◇일산 대규모 미분양에 발목, '10년째 순손실'

두산건설은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된다. 지배구조를 보면 지주회사격인 ㈜두산 아래 두산중공업이 있고 두산건설의 모회사가 두산중공업이다. 구조적으로 두산건설에 금이 가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악몽은 2009년 일산 주상복합아파트인 ‘두산위브더제니스’ 분양으로 거슬러오른다. 총 사업비만 2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인데, 일산신도시 개발계획에 없었다가 2000년대 중반 추진됐다. 허허벌판 논밭에 초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서니 주목도는 상당했다. 하지만 당시 연간 매출이 3조원에 못 미쳤던 두산건설이 진행하기에는 리스크가 꽤 컸다.

일산 위브더제니스/사진출처=두산위브 홈페이지

아니나다를까 출발부터 잡음이 불거졌다. 시행사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으로 대출받은 돈을 빼돌리고 이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를 시도한 사실까지 적발되면서 대표 등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사를 바꾸고 2009년 분양에 나섰으나 미분양이 무더기로 생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은 여파였다. 대형평수 위주의 설계 등 잘못된 시장 분석도 패착이 됐다. 두산건설은 입주 초기에 먼저 일정기간 살아보고 입주를 결정하는 '애프터 리빙제'까지 실시했지만 미분양을 해소하긴 역부족이었다.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두산건설은 연이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 5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것을 마지막으로 지난해까지 매년 순손실을 이어오고 있다. 기존 손해도 컸지만 부활에 시동을 걸 만한 연료도 부족했다. 리스크 최소화에 치중한 보수적 수주전략으로 본업이 위축된 탓이다. 실제 2009년 두산건설의 수주잔고는 11조원이었지만 지금은 7조원을 겨우 넘는다.

◇두산그룹의 '아픈 손가락', 유동성 위기에도 미련

손실이 이어지자 ‘밑빠진 항아리 물 붓기’도 계속됐다. 지난 10여 년간 두산그룹에서 두산건설에 흘러간 자금은 약 2조4000억원, 이 가운데 2조700억원이 두산중공업에서 나갔다. 2011년 3000억원, 2013년에 8716억원을 지원했다. 2016년에는 두산건설의 전환상환우선주를 기존 주주로부터 되사오느라 4000억원을 썼고 2019년에도 유상증자로 3000억원을 수혈해줬다.


급기야 2019년 말에는 유가증권시장 입성 45년 만에 두산건설의 상장폐지가 확정됐다. 그룹 안팎에서 두산그룹이 살려면 두산건설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지 오래였으나 박정원 회장은 매각설을 잠재우고 자회사 전환 카드를 골랐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89.74%)였던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의 잔여지분을 전부 사들여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주주 단일화로 경영 효율화를 꾀하겠다는 이유였다.

오너 일가의 애착이 두드러졌던 결정이다. 두산건설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전 회장이 1982년 처음으로 입사한 두산그룹 계열사다. 그로부터 그룹 수장자리를 이어받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2009년에서 2013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던 곳이기도 하다. 박정원 회장은 오너 4세 가운데 처음으로 회장직에 올랐는데, 그 계열사가 두산건설이었다.

하지만 꿈쩍 않던 두산그룹도 작년에는 더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탈원전 정책에 따른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가 촉매가 됐다. 두산중공업은 작년 6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으면서 3조원의 자금을 긴급 지원받았으며 자구안의 일환으로 두산건설 매각을 선택지에 넣었다.

채권단은 ‘싸게라도 팔라’며 두산 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실제 중견 건설사와 부동산 디벨로퍼, 사모펀드 등이 두산건설에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모두 중도 하차했다. 두산 측이 실사 과정에서 정보를 소극적으로만 제공한 탓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의 매각 의지를 두고 의문이 나왔던 배경 중 하나다.

◇그룹 울타리 떠날까, 매각 급물살

잠재 리스크를 걱정한 원매자들이 자꾸 발을 빼자 두산그룹은 물적분할을 통해 '밸류그로스'를 신설했다. 두산건설에서 일산 위브더제니스 상가, 인천 학익 두산위브 아파트, 한우리 리조트, 공주 신관 토지 등 신통치 못한 프로젝트들을 떼어내 만든 일종의 배드컴퍼니다. 부실 자산을 덜어내 인수자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였다.

당근책은 바로 효과를 봤다. 앞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가 실사 이후 관심을 접었던 대우산업개발이 지난해 6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지지부진했던 매각에 탄력이 붙는듯 했으나 가격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9월 무산됐다.

신영증권과 매각 협의에 들어간 것은 올해 3분기 말 즈음으로 알려졌다. 1년 가까이 감감무소식이 이어지면서 매각 자체를 접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은행 자본과의 종속관계를 한시바삐 끊고 싶어하던 두산그룹이 매각 재추진을 서둘렀다는 후문이다.

두산건설의 재무개선도 매각 재개에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건설은 물적분할 등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하면서 2019년 말 6291억원이던 순차입금이 올해 상반기 말 605억원으로 감소했다. 차입금의존도 역시 2019년 말 29%에서 지난해 말 15%, 올해 상반기 말 11.5%까지 낮아졌다


현재 신영증권PE는 큐캐피탈파트너스,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유진자산운용 등 여러 FI(재무적투자자)와 연합전선 구축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 대상은 두산그룹이 보유한 두산건설 지분 99.99%다. 다만 시장에서는 추후 두산그룹이 두산건설을 되사오는 구조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채권단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두산건설은 1960년 창립된 이후 두산그룹 성장의 기틀 마련에 상당한 공을 세웠다. 박두병 초대회장이 자본금 500만원으로 세운 동산토건이 그 모태다. 1993년 두산건설로 사명을 바꾸고 고려산업개발과 2004년 인수합병됐다. 이번 거래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일시적으로나마 두산그룹 품을 떠나게 된다면 60여년 만의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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