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3월 21일 07: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6년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안정기에 접어든 시점에 돌연 '딥 체인지(Deep change)'를 화두로 꺼내 들었다. 변화와 혁신 없이는 도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성찰과 경고의 메시지였다. 다만 소위 잘나가는 그룹들이 연초나 연말에 으레 던지는 군기잡기용 위기론이라는 평가절하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수 년의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SK그룹이 보여준 딥 체인지의 폭과 깊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특히 사모펀드(PEF)와 협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 제왕적 경영과 무한 경쟁, 이윤 추구 비즈니스 모델 등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틀을 벗고 집단 지성 경영, 사회적 기업, ESG 비즈니스 모델 등 '누보 레짐(신체제)'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SK그룹은 새로운 경영 투자 파트너로 급부상한 PEF와 변화의 동력을 만들고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있다. SK E&S, SK루브리컨츠, SK에코플랜트 등 기존 핵심 계열사들은 물론 SK온과 11번가,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웨이브 등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규 계열사들까지 그 대상에 제한이 없다.
시장에서 눈여겨보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특정 영역과 업종에 제약을 두지 않고 같은 경영 목표만 제시한다며 재무적 투자자(FI)와 언제든 손잡을 수 있다는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투자자를 택하는 데 있어서도 이름값이나 운용 규모 만을 보고 재단하지 않았다.
손잡은 PEF 중에는 IMM과 H&Q, 어펄마캐피탈 등 전통의 강호들이 당연히 포진돼 있다. 하지만 키움PE와 이음PE 등 중견사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신생이나 다름없던 LX인베스트먼트를 SK에코플랜트의 투자 파트너로 선정하면서 시장에 반향이 일기도 했다. ESG 밸류체인 플랜에 대한 공감대가 과감한 결단으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확실한 비전만 제시할 수 있다면 SK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장에 증명했다.
특정 몇 개 계열사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전사적으로 그것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룹 전체를 관통하는 미래 목표와 평가 지표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 회장의 딥 체인지 일갈이 그 시작점이다. 판이 깔리면서 비로소 변화의 의지가 실행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경계할 점도 분명히 있다. 카카오 사례가 있지 않나. FI 투자 유치와 기업가치 제고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챙겨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을 소외시했고 결국 근간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보 레짐은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규범과 원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최 회장의 몫이다. PEF와도 박자를 맞춰 나아가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혁명적 변화와 파괴적 혁신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누보 레짐이 완성됐다.
최 회장이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투자전문기업 회장을 만나고 직접 인공지능 로드맵 태스크포스(TF)를 진두지휘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사내 호칭을 토니(Tony)로 불러달라는 요청 역시 가볍게 들리지 않은 이유다. 누보 레짐의 시계바늘은 이미 돌아가고 있다. Tony,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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