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0월 13일 08: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정감사는 의회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국정감사의 역사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 1949년 제헌헌법에 의거해 시작했는데 1972년 유신헌법에서 국정감사 조항을 삭제했다. 다시 부활한 건 1988년 10월 5일이다. 국부독재가 끝나고 의회 민주주의가 부활한 상징이다.국정감사는 깜짝 스타 정치인의 등용문이다. 날카로운 질문과 정곡을 찌르는 문제제기로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스타들이 있었다. 정부 정책이 바뀌고 정치가 제 할일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엔 국회의원보다 증인들이 더 스타가 되곤 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호통 감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피감기관을 골탕 먹이고 망신 주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몇몇 스타 정치인의 순기능이 국정감사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한다. 행정부의 기능을 견제하는 기능 자체만으로 국정감사는 필요한 제도다.
올해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선 5대 시중은행 은행장들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유례가 드문 일이다. 국회의원들은 금융지주 회장들을 부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IMF연차총회 등 해외출장 일정에 상황이 바뀌었다. 금융지주 회장들에겐 여의도보다 맨해튼이 더 중요한 곳이다. 글로벌 주주들과 금융인들을 만나는 게 더 생산적이다. 기업가치를 높이고 금융 시장 안정화에 머리를 맞대는 게 더 절실하다.
국감장엔 은행장들이 나섰다. 은행장들은 몇날며칠 리허설을 했다. 예상 질문을 뽑아 답변을 준비하고 자세와 태도를 연습했다. 괜히 꼿꼿하게 바른 소리로 대답을 했다간 본전도 못 건진다.
모든 일은 시나리오대로 흘러 가지 않는 법이다.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당초 횡령 사건에 해외 송금 스캔들이 리허설 주제였다. 은행 내부 통제로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쏠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케케묵은 채용 비리 사태가 메인으로 떠올랐다.
채용 비리는 2017년~2020년에 벌어진 일이다. 게다가 사법당국의 판단이 모두 끝났다. 예상치 못한 집중 포화에 곤혹스러운 대답만 오갔다. '피해자를 구제하라'는 국회의원의 호통에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한다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정보보호 이슈 탓에 이미 관련 정보가 모두 폐기됐다. '판결문'을 따른다는 원론 밖에 더할 답이 없었다.
내부 통제 이슈, 횡령 이슈에 은행장들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내부 통제를 다시 강화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미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나온 얘기인데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그 바쁜 은행장들이 여의도에 모여 비지땀만 흘렸다.
국회의원들의 의도는 이해가 간다. 한정된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면 호통을 치는 게 가장 빠르다. 은행장들, 고위 관료들이 쩔쩔 매는 모습에 국민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은행장들에게 물어야 할 좀 더 가치 있는 질문들이 있다. 전대 미문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에 전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다. 금리 인하권을 확대하라는 호통에 앞서 금융시장 불안, 경기침체에 따른 차주들의 리스크 요인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으면 어땠을까. 크레디트 스위스의 위기설에 대해 금융사 CEO들의 견해를 듣고 금융시장 안정의 시그널을 찾을 수 있었다.
국내 은행들(금융지주)은 턱 없이 낮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자산 가치의 1/3 수준에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 은행들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안, 은행의 바람직한 지배구조모색은 금융산업의 발전과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얘기꺼리다.
외국인 주주들에게 배당을 자제하라고 나무랄 게 아니라 국민연금이,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은행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모으는 국감이었을면 어땠을까.
정관계에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항상 저격을 당하는 대상이다. 나라에서 내준 라이선스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갖는 숙명이다. 하지만 '금융'도 키워야 하는 하나의 산업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파워는 탄탄한 금융 체력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은행장들에게 물어야 했던 질문은 '채용비리'가 아니다. 금융시장에 대해, 국민은행의 미래에 대해 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년 국정감사에선 은행장들도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것 같다. 여의도보단 맨해튼이 아무래도 생산성이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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