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2월 08일 10: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8년 박정림 사장(사진)이 KB증권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파격이었다. 은행 출신 첫 증권사 사장, 증권사 첫 여성 사장 등 업계 ‘최초’ 타이틀과 찬사가 쏟아졌다. 진작부터 박 사장이 거론되긴 했지만 워낙 파격적이었던 터라 업계는 박 사장을 주목했다.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성장동력으로 삼아 KB증권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뤄냈다. 박 사장이 재임한 4년 동안 KB증권은 자기자본 4조원대 증권사에서 6조원을 바라보는 증권사로 성장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신임을 실력으로 보답한 셈이다.

그룹 내 존재감도 갈수록 커졌다. 초기 박 사장의 역할은 지주와 은행, 증권 등 그룹 WM과 S&T 등을 총괄하는 자본시장부문장이었지만 올해부터 보폭이 확대됐다. 박 사장이 자본시장과 함께 CIB부문까지 이끌고 있다.

향후 거취에도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유연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KB증권에 대한 조직장악력을 끌어올려 도약기를 이끈 만큼 박 사장이 다른 비즈니스 그룹장처럼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라임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징계 논란과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시선도 있다.


◇KB증권, 그룹 비은행계열 핵심으로 ‘우뚝’

“WM, S&T, 경영관리부문을 총괄하는 현(現) 대표이사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수익성을 강화했다.” 2021년 12월 27일 KB증권의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에서 당시 김성현 사장과 함께 박정림 사장을 각자 대표로 추천하며 위와 같은 사유를 밝혔다.

그렇게 박 사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2018년 말 KB금융그룹 인사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이래 올해까지 약 4년을 KB증권을 수장으로서 이끈 것이다.

박 사장이 연임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성과 덕분이다. 박 사장이 이끄는 동안 KB증권의 S&T와 WM부문은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했다. WM금융상품자산은 2019년 말 28조4000억원에서 39조5000억원으로 약 10조원가량 불어났고 리테일고객 총자산도 같은 기간 74조원에서 133조원이 됐다.

영업순수익도 대폭 증가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위탁매매부문 영업순수익은 2019년 3889억원에서 2021년 8608억원, 상품운용부문은 3039억원에서 4848억원, 자산관리부문도 604억원에서 615억원으로 늘어났다.

KB증권이 사상 최대 실적을 2년 연속 경신한 배경이다. KB증권은 2020년 별도기준 당기순이익 3743억원, 지난해 5976억원을 냈다. 막대한 이익 유보금 덕분에 자기자본도 크게 증가했다. KB증권의 별도기준 자기자본은 2019년 4조7000억원 정도에서 지난해 말 5조4000억여원으로 늘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비은행부문 강화 정책에도 탄력이 붙었다는 평가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비은행부문은 KB증권의 도약 등에 힘입어 전체순이익에서 42.6%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그룹 청사진에 부합한다. 윤 회장은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한 이래 비은행부문 강화를 전사적 과제로 내걸었는데 KB증권이 이런 청사진의 핵심 계열사로 발돋움한 셈이다.

◇부회장 오를까, 실적 부진·라임사태 '걸림돌'

박 사장은 2021년 말 인사에서 더욱 중용됐다. 종전까지 박 사장은 WM과 S&T를 중심으로 그룹 자본시장부문장을 맡아 총괄해왔지만 지난해 말 인사에서 KB금융그룹 총괄부문장에 선임돼 CIB까지 아우르게 됐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직제상 박 대표가 총괄부문장을 맡고 그 아래 김 대표가 CIB부문장을 맡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CIB는 상업은행(CB)과 투자금융(IB)를 결합한 말로 기업금융 중심의 투자은행을 뜻한다. 은행의 기업금융조직과 비은행 계열사의 IB조직을 연계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KB금융그룹의 청사진이다.


CIB는 증권업계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올해 성과를 냈다. KB금융그룹이 IB부문에서 거둔 수수료이익은 올 들어 3분기 말까지 3270억원에 이른다. 2019년 2020억원인 것과 비교해 대폭 증가했다.

이에 따라 박 사장이 연말 인사에서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B금융지주의 총괄부문장 가운데 박 사장만 부회장이 아니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현재 KB금융지주는 전체 사업부문을 4개 비즈니스그룹으로 나눠 △허인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개인고객 및 자산관리(WM)·연금·SME부문 △이동철 부회장이 담당하는 글로벌 및 보험부문 △양종희 부회장이 맡은 디지털 및 정보기술(IT)부문 △박정림 사장이 맡은 자본시장·CIB부문으로 구성됐다.

박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게 되면 상징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여성경영인으로서 금융업계의 유리천장을 깼다는 의미 외에도 정통 은행원 출신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윤 회장의 비은행부문 강화 정책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다.

박 사장은 1963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체이스맨해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KB국민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KB국민은행 사상 두 번째 여성 부행장, 증권업계 첫 여성 최고경영자 등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박 사장을 부회장으로 중용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지난해까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던 KB증권이지만 올 들어 3분기까지 연결기준 순이익 3037억원을 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1%나 감소했다.

주로 박 사장이 맡고 있는 S&T와 WM사업 실적이 부진했다. 물론 업황 악화에 따른 ‘예고된’ 실적 부진이지만 박 사장이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라임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징계논란도 여전히 걸림돌이다. 벌써 수년 동안 따라붙은 꼬리표로서 윤 회장이 박 사장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라는 데 이견이 없다.

박 사장은 2020년 라인펀드 사태로 금융감독원에서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았는데 향후 금융위원회에서도 이런 제재를 확정한다면 박 사장은 일정 기간 금융사에 취업하는 데 제한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