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3위 현대차의 힘]글로벌 이미지 바꾼 '푸른 눈의 정의선 사단'②디자인·성능 평가 뒤집은 현대차…'혼혈주의' 글로벌 성공 동력
허인혜 기자공개 2023-02-06 07:40:14
이 기사는 2023년 02월 01일 16시2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2년, 현대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뉴그랜저XG는 출시하자마자 외형을 바꾸는 데 100억원을 써야했다. 미국 딜러들이 '못생겨서 못팔겠다'는 아픈 평가를 내놨기 때문이다. 빨간색 후미등이 지나치게 크고 뒤쪽 번호판이 트렁크에 달려 세련되지 못하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해외시장용으로 별도 모델을 만들었고 한해만에 내수용 차량도 디자인을 수정해 2004년형 뉴그랜저XG로 교체했다.그랬던 현대차그룹의 완성차들은 이제 해외 디자인어워드에서 승전보를 울리고 있다. '가성비 차'로 평가절하됐던 성능에서도 국제 톱티어 타이틀을 달았다. 변화의 단초는 외국인 소비자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외국인 임원들이다. 글로벌 3위에 안착한 현대차그룹의 디자인과 성능은 '푸른 눈의 정의선 사단' 손끝에서 나왔다.
◇정의선의 '삼고초려'로 합류한 디자인 명장들
현대차그룹에는 최고창조책임자(CCO·Chief Creative Officer)라는 독특한 직함이 있다. 현대차가 전략도, 재무도 아닌 창의력(Creative)에 대표성을 따로 내준 이유는 글로벌 시장 톱티어로 가는 여정에서 디자인이 엑셀러레이터를 밟아줬기 때문이다. 피터 슈라이어 고문, 루크 동커볼케 COO가 현대차그룹의 얼굴을 국제적으로 바꿨다.
당시 슈라이어 고문은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디자인 담당 총괄책임자 출신으로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에 꼽힌 인물이었다. 우리나라 차 업계에서 국제적 디자이너를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영입한 건 당시가 처음이다.
CCO라는 직함은 루크 동커볼케 사장이 2020년 처음 달았지만 그 전신 격인 디자인총괄대표(CDO)부터 역사를 센다면 햇수로 20년 넘게 이어진 오랜 요직이다. 슈라이어 고문은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현대차그룹의 CDO에 올랐다. 그 전에는 국내파 디자인연구소장 등이 CDO를 맡아 왔다.
정 회장은 슈라이어 고문을 영입하며 세계 시장에서의 브랜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는 "아무리 좋은 차를 만들어도 디자인이 나쁘면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디자인이 글로벌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점을 일찍부터 간파한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디자인이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한 것도 이때부터다. 슈라이어 고문 영입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의 일부 차 디자인은 앞면은 A브랜드, 옆면은 B브랜드, 뒷면은 C브랜드를 따라했다는 '짜깁기 디자인' 악평을 받았다. 지금이야 인도에서 잘나가지만 초반 '불안하게 생겼다'며 디자인으로 혹평을 받았던 아토스며 뉴그랜저XG가 디자인 암흑기에 나왔던 차다.

동커볼케 사장 역시 정 회장이 영입에 공을 들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벤틀리 수석디자이너 출신으로 2016년 현대차그룹으로 적을 옮겼다. 1990년부터 자동차 디자인을 시작했다. 폭스바겐 그룹에서 아우디, 스코다, 세아트, 람보르기니 등을 디자인했다. 2020년 잠시 현대차그룹을 떠났다가 2021년 연말 인사로 복귀했다.
◇슈라이어·동커볼케, '디자인 기아', '세련된 제네시스' 이끌다
슈라이어 고문과 동커볼케 사장은 현대차그룹 차의 디자인 위상을 어디까지 끌어올렸을까. 기아 K시리즈의 상징적인 디자인인 호랑이코 그릴이 슈라이어 고문의 작품이다. 기아가 '디자인 기아'라는 별칭을 갖게된 시기가 이때부터다. 스포츠 세단 스팅어도 역작으로 꼽힌다.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서의 위치도 달라졌다. 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2009년부터다. 쏘울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 뒤로 벤가와 스포티지, 모닝, 프라이드, 씨드 등 출시한 차들이 매년 레드닷 등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기세는 최근까지 이어져 EV6가 지난해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와 레드닷 어워드에서 트로피를 들었다.

2018년 10월부터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 브랜드의 디자인을 총괄해 왔고 차세대 디자인 전략도 수립했다. G90와 SUV GV80, G80 페이스 리프트와 코나, 팰리세이드 등이 동커볼케 사장의 손을 거친 결과물 들이다. 포니와 그랜저의 디자인 정통성을 이어왔다는 평가가 따른다.
동커볼케 사장이 직함에 디자인이 아닌 창조를 붙인 이유는 그가 디자인뿐 아니라 현대차그룹의 브랜딩을 맡았기 때문이다. 아이오닉 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등 현대차그룹의 주력 차종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전기차 시대에 맞춰 디자인 '룰'도 발빠르게 바꿨다. 통상 내연기관차를 먼저 디자인하고 전기차에 덧씌우는데 현대차는 신형 코나를 디자인하며 이 순서를 전기차에서 내연기관차 순으로 교체했다. 현대차그룹의 패밀리룩도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스타리아와 7세대 그랜저, 코나에 적용한 수평형 램프가 우주선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완성차 '독일급'으로 만든 알버트 비어만

비어만 고문은 BMW 출신의 고성능 모델 전문가다. BMW의 고성능차 주행성능과 서스펜션, 구동, 공조시스템 등을 개발해 왔고 BMW M연구소장을 지내며 BMW의 고성능 버전인 M 시리즈를 구축했다. 현대차그룹으로 와서는 고성능 브랜드 'N'을 만들었다.
비어만 고문 영입 후 탄생한 N 시리즈와 스팅어, G70 등은 나오자마자 독일 차의 기술력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실제 성능도 그랬다. 2017년 출시된 제네시스 G70 3.3터보 모델의 제로백은 4.7초로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와 견줄만 했다. 이 기록도 기아 스팅어가 세웠던 제로백 국내 최고기록을 G70이 경신한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는 지난해 7개 차종을 차급별 1위에 올렸다. 현대차 펠리세이드와 싼타크루즈, 기아 카니발과 EV6, K5, 제네시스 G80과 GV70 등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의 투트랙 전략을 쓰는 데도 비어만 고문의 기술력이 큰 몫을 했다. 통상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면 전기차, 하이브리드카면 하이브리드카 등 집중하는 부문이 있는데 현대차는 두 차세대 차종에서 모두 선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기차와 수소차의 장점을 결합한 콘셉트카 '비전 FK'도 비어만 고문이 주도해 왔다.
또 다른 족적은 모터스포츠 출전이다. 고성능차 부문에서 현대차 입지를 강화하려면 모터스포츠에 투자해야한다는 정 회장의 생각을 기술력으로 완성해 준 인물이 비어만 고문이다. 2021년에는 세계 3대 모터스포츠 대회인 월드랠리챔피언십(WRC)과 월드투어링카컵(WTCR), 퓨어 ETCR(PURE ETCR)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2022 WTCR에서도 종합 우승의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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