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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의 자율주행]백팩 맨 회장님, 2년 뒤 운전석에서 티타임 즐긴 사연은①국내 첫 자율주행차, 정의선의 힘…국내 도로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종횡무진'

허인혜 기자공개 2023-03-30 09:25:26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3월 28일 16: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의 2015년 라스베이거스 출장길은 특별했다. 수행비서 없이 백팩을 둘러맨 소탈한 모습도 화제가 됐지만 또 한번 눈길을 끈 행보는 첫 방문지다.

그는 4년 만에 방문한 CES의 첫 걸음을 삼성전자로 향했다. 당시 CES에는 내로라하는 완성차 업체 11곳이 참가해 국제 가전 전시회가 아니라 자동차 전시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정 회장이 당연히 토요타나 벤츠 등 굵직한 완성차 부스를 먼저 찾으리라는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 회장이 삼성전자의 부스를 가장 앞서 찾은 이유는 스마트워치 기술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스마트워치로 구현되는 무인 주차기술을 '열공'했다는 후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정 회장의 겉은 소탈했지만 속은 복잡했을 시기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와 벌어진 전기차·자율주행 기술 보폭을 따라잡고 선도하는게 3세대 경영인으로서의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벤츠·아우디·구글에 밀리던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기술

차간거리와 차선 유지, 과속 방지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8년 전의 도로 사정을 생각하면 문장 앞에 '지금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국산차에 처음으로 이 기술이 탑재된 게 2015년이다. 이 기술은 운전자를 보조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사실 자율주행의 첫 발이나 다름없다.

완성차의 미래형 하드웨어가 전기차라면 미래형 소프트웨어는 자율주행 기술이다. 전기차의 도약 만큼이나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도 함께 이뤄져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율주행 기술의 중요성을 간파한 정 회장이 있었다.

정 회장이 자율주행 상용화 의지를 전면에 드러낸 건 2015년께다. 현대차그룹의 연구는 2010년대 초반부터 이뤄져왔지만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앞서지는 못했다. 이때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는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는 일본과 독일과 비교하면 2년, 구글 등 IT 기업에 비하면 5년까지도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아우디가 각각 자율주행 콘셉트카를 국제 전시회에 선보일 만큼 앞서 있었다. 아우디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885km 거리를 운전자의 최소 도움만 동반한 자율주행에 성공해 해당 콘셉트카 A7을 공개했다. 벤츠는 운전석 등 모든 좌석을 회전하도록 해 차가 홀로 운전하는 동안 탑승객들이 마주보며 대화할 수 있는 콘셉트카를 내놨다.

같은 시기 현대차그룹의 기술은 좋게 말해 소박했다. 음성을 통한 시동 걸기나 문 여닫기 등이었다. 외국산 차들은 사람이 없이도 브레이크를 밟고 차선까지 바꾸던 때다. 늦어진 걸음 만큼 정 회장의 의지도 강했다. 정 회장은 같은 해 중동에서 연 첫 세계 대리점 대회에서 직접 연단에 서 자율주행기술 상용화를 3대 미래계획 중 하나로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당시 부회장이 2015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국제 오토쇼에서 연사로 나선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정의선의 브랜드' 제네시스 데뷔작 EQ900, 자율주행 기술 첫 발

언제부터 현대차와 기아에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될 지를 점쳤던 때도 이 시기다. 종전까지는 새로운 연식의 차량의 의미가 하드웨어의 성능 상승이었다면 2015년 하반기부터는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도 뉴 카의 기준이 됐다.

에쿠스를 계승한 EQ를 통해서다.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은 외부 공식활동 때 꼭 에쿠스를 타고 다닐 만큼 에쿠스를 아꼈다는 전언이다. 현대가의 애정에도 에쿠스의 인기는 점점 잦아들고 있었고, 이때 정의선 회장이 고급차 반등의 카드로 들고 나온 게 자율주행 시스템이다.
EQ900 전측면 이미지.

EQ900은 정 회장에게 특별한 차다. 당시에는 '정의선의 차'로도 불렸다. 에쿠스의 빈 자리를 채워야 하는 부담을 안고 출범한 차이면서 3세대 경영인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는 차이기도 했다. 차명이었던 제네시스가 브랜드로 출범했던 2015년 '브랜드 제네시스'로서 처음으로 내놓은 차가 EQ900이다. 정 회장이 삼고초려했다고 알려진 피터 슈라이어가 처음으로 디자인을 맡은 고급차이기도 하다.

2015년 하반기 출시된 EQ900는 국산차로서는 첫 자율주행 기술 차량이라고 불린다. 처음으로 차간거리와 차선 유지, 과속 방지 등의 기술이 담긴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이 탑재된 차다. 고속도로 주행지원(HDA: Highway Driving Assist) 시스템이라고도 불렸다. 고속도로에서 시스템을 작동시키면 톨게이트·인터체인지에 진입한 뒤 자동 해제될 때까지 주행을 보조해주는 능동형 주행 시스템이다.

외산차와의 기술력 차이는 국내 도로 최적화 시스템으로 눌렀다. 적어도 우리나라 도로에서 만큼은 자율주행 기술로 따라올 완성차가 없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자부심이었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운전석에서 열린 '회장님의 티타임'

하지만 언제까지나 우리나라에서 최고를 추구할 수는 없었다. 벤츠와 BMW, 아우디를 누르겠다던 제네시스의 글로벌 고급차 목표만 봐도 그랬다. 정 회장이 이듬해인 2016년 CES와 디트로이트 모터쇼, 제네바 모터쇼, 베이징 모터쇼로 뛰어다닌 이유도 글로벌 시장에 현대차그룹의 미래기술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정 회장이 들고 나온 화두는 '자유로운 이동 생활(Mobility Freedom)'이었다. 정 회장은 전 세계를 돌며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투자 계획을 강조했다. 말뿐이라면 두루뭉술한 계획에 불과했겠지만 부회장의 의지였던 만큼 현실화 속도도 빨랐다.

현대차그룹은 2017년 CES에서 아이오닉의 자율주행차 주야간 시범운전을 기획했다. 2015년 아우디의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에 군침을 삼켰던 기업이 2년 만에 괄목상대해 돌아온 셈이다.

라스베이거스 도심 한복판에서 자율주행 시연에 나섰다. 자율주행 레벨4 수준으로 당시 개발된 콘셉트카로서는 거의 최정점의 기술을 보유했다. CES 전시장 주변의 교차로는 물론 횡단보도와 다차선 구간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201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당시 부회장이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에 시승한 모습.
시승 행사도 열렸다. 운전자는 다름아닌 정 회장이다. 정 회장은 CES 미디어 콘퍼런스 연사로 나서기 전 동영상으로 시승기를 상영했다.

운전석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모습을 전했다. 운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자율주행 모드에서는 메시지를 체크하거나 잡지도 읽었다"고 답했다. 현대차그룹의 얼굴이자 차세대 경영인으로 나선 그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기술력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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