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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펜 선생님' 자처하는 금감원 [thebell note]

안준호 기자공개 2023-04-06 07:25:58

이 기사는 2023년 04월 03일 0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상장을 가로막은 셈이죠. 청약에 참여하는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시장보다 앞서 판단을 내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한 증권사 관계자에게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상장 철회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창업기획사(액셀러레이터·AC)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지난달 상장 증권신고서를 철회했다. 수요예측을 하루 앞두고 금감원이 정정 신고서를 요구하며 계획된 기업공개(IPO) 일정을 지킬 수 없었다.

금감원이 공식적으로 상장 가부를 판단한 것은 아니다. 신주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서 정정을 요구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서는 사실상 상장 '부적합'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는 IPO 호황기였던 2020년부터 급증했다. 정정 요구가 반복되며 총천연색으로 물든 증권신고서를 보는 일이 흔해졌다. 이전까진 없었던 정정 요구 공시도 잦아졌다. 올해 역시 신고서에 '빨간펜'을 들이대는 기조가 여전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타 증권신고서와 달리 상장 신고서는 분량도 길고 내용도 풍부하다. 목차는 정해져 있지만 어떤 내용을 채울지는 주관사와 발행사 재량에 달렸다.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기업의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를 검증하는 문서다.

정해진 답이 없다 보니 자율적으로 작성이 이뤄진다. 토씨 하나까지 문제삼는다면 사실상 통과가 불가능하다. 논술 문제를 객관식으로 채점한다면 만점자가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한 증권사 IB 실무자는 "증권신고서는 회사의 강점과 약점, 자금 사용계획, 기업가치 산정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목차는 정해져 있지만 어떤 식으로 서술할 것인가는 발행사와 주관사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정 요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상장 신고서가 '논술형'인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기업을 판단하는 시선은 투자자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역시 평가가 엇갈렸다. VC 업계에서는 호의적인 시선이 강했다. 반면 여의도 투자자들은 불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공모를 진행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기업설명회(IR)는 물론 기자간담회에서도 수십, 수백개의 질의가 쏟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고객 자금과 쌈짓돈을 털어 주식을 받는 투자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판단하는 적정 가격도 나왔을 수 있다.

공모주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국내 투자자들의 눈높이는 한층 높아졌다. 증권신고서가 제출되면 1~2일 이내로 유튜브나 블로그에 자세한 분석 내용이 올라오는 시대다. 공모주는 배정받기만 하면 이득이라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금감원이 구태여 '빨간펜 선생님'을 자처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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