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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에코 에너지]친환경 마지막 퍼즐 '원자력'…SMR에 거는 기대⑥독자기술 집중한 박지원, 10년만에 찾아온 '원전 르네상스' 기회 잡았다

허인혜 기자공개 2023-06-12 07:26:06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6월 09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9년 말 서울대학교 신공학관에는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당시 사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몰린 학생들로 강의실이 꽉 찼다. 200여명의 미래 공학도들 앞에서 박 회장은 2020년 매출 30조원과 포춘(Fortune)지 선정 글로벌 300위권을 자신했다.

자신감의 원천은 그린 에너지 사업. 그중에서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다. 박 회장은 2000년대 이미 이산화탄소 절감 문제가 글로벌 핵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봤다.

그날 강연에서도 박 회장은 화석연료의 주된 대체 에너지원이 될 만한 대안은 원자력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말뿐인 기대가 아니라 박 회장이 사장에 취임한 이후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자력 발전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원자력 부문에서는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됐다. 종주국인 미국에도 수출한다. 국내외 정책과 규제로 부침이 많았던 시기에도 원자력은 놓지 않았다. 박 회장 에코 에너지의 마지막 퍼즐인 원자력 발전 히스토리를 들여다 본다.

◇박지원이 택한 원자력, 탄소중립 달성 목표에 친환경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은 두산에너빌리티 내에서 입지 변화가 많았던 사업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박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했다. 반면 2010년대 후반에는 국내외 규제로 석탄과 함께 대체해야 하는 에너지원으로 꼽혔다. 올해부터는 다시 두산에너빌리티의 핵심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양날의 검'으로 꼽히는 에너지원이라서다. 국내에서는 탈원전과 원전 지원 정책이 오갔고 글로벌 시장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이 대표적인 예다. 독일은 4월 15일을 기점으로 62년간 이어온 원자력 발전을 완전 중단하고 탈원전 국가가 됐다. 반면 핀란드는 16년 만에 새 원전을 지었고 프랑스도 신규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해석하는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다면 원자력은 친환경 에너지에 속한다. 간판 저탄소 에너지원이라서다. 박 회장과 국내, 해외 여러 국가들도 이런 관점에서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친환경 기업 전환에도 원자력이 주효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원자력 발전은 과거와 다르다. 신규 원전 가동을 준비 중인 국가들은 대형원전 건립과 동시에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도 몰두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간판 기술도 원전 주기기 기술과 SMR이다. 기술 선두와 친환경 전환, 매출 확대의 세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가 찾아왔다는 의미다.

◇대형원전·SMR 기술 다 잡았다

SMR은 말 그대로 원전을 소형화한 기술이다. 출력 300MW까지를 소형으로 본다. 몸집이 작은 만큼 설비가 쉽고 원전을 식히는 데에 냉각수 등 외부의 힘을 필요로 않는다. 대형원전과 비교하면 출력 전기량은 적지만 안전성과 친환경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탈탄소 발전이 절실한 글로벌 국가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다만 기술력 확보가 쉬운 부문은 아니다. SMR은 대형원전의 설비가 작은 몸체에 모두 포함돼야하는 만큼 기기들이 빼곡히 구성돼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0년 SMR 모델 중 최초로 미국 NRC 설계인증 심사를 통과했다.

대형 원전 부문에서도 앞서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 기술보유 기업이다. 국내 한울, 신고리 원전 주기기 공급과 미국, 중국, 캐나다 등의 신규원전 사업협력, 원자로 수출 등은 박 회장이 키워온 기술력에서 비롯됐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자력은 햇수로 37년간 성장해 왔다. 첫 진출은 1987년 한빛 3,4호기 주계약 체결이다. 두산의 품에 안긴 2000년대부터 원자력 발전의 첫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08년 개발한 원전 계측제어시스템(MMIS). 사진=두산에너빌리티

◇2008년 '박지원 사장' 취임으로 찾아온 원자력 전성기

특히 박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2008년은 두산에너빌리티 원전 기술이 굵직한 획을 연달아 그은 해다. 박 회장의 독자기술 확보 열망이 원자력 부문에서도 주효했다.

2008년에는 원자력 발전소 기술의 독립이 선언됐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전 계측제어시스템(MMIS) 국산화에 성공하면서다. MMIS는 원전을 총괄하는 두뇌로 불린다. 2008년 당시에는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 원전 선진국들만 이 기술을 보유했었다. 핵연료 취급장치 자동제어 시스템도 같은 해 신기술로 확보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직원이 미국기계기술자협회 표준규격위원회(ASME) 원자력인증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된 해도 이때다. ASME 원자력인증위원회는 국제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단체다.

기술이 확보되면서 글로벌 수주가 늘었다. 2008년 원전의 종주국으로 불린 미국에서 3000억원 규모의 핵심 주기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조지아 신규원전 건립에 쓰였다. 이후 2000억원 규모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원전용 주기기 공급계약도 체결했다. 미국이 추진했던 신규 원전 건설계획 중 1호와 2호 프로젝트의 핵심기기를 모두 제공하게 된 셈이다.

이듬해에는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한 국산 원자로를 처음으로 국외에 수출한다. 중국 절강성 친산 원자력 발전소 3호기 원자로로 창원공장에서 제작했다. 2005년 수주한 계약으로 4년만에 수출까지 이어졌다.

신고리 원전 2호기 원자로도 이 시기 공급했다. 2010년에는 당시까지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 금액 중 최대 규모인 40억 달러 수준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용 주기기 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국제기구에 공급한 가압기 모습. 사진=두산에너빌리티

◇10년만에 찾아온 '원전 르네상스' 잡는다

이후에도 원자력 발전 사업은 이어갔지만 잠시 주춤한 때가 있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재정적으로 부침이 많았다. 탈원전 정책에도 일부 영향을 받았다. 가치판단을 떠나 두산중공업의 원자력 사업 매출액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국내 신규원전 건설이 불확실해지면서 당사는 영국, 인도, 사우디 등 새로운 시장 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말로 돌려 표현하기도 했다.

그랬던 두산에너빌리티가 올해 지난해보다 1조원 늘어난 수주 목표를 들고 나왔다. 수주 목표는 8조6000억원이다. 1분기에 이미 목표의 절반을 달성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원전 르네상스'에 올라타면서다.

3월 체결한 2조9000억원 규모의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공급계약과 카자흐스탄, 투르키스탄 복합화력발전소 등이 원전 관련 계약으로 꼽힌다. 목표치의 40%는 원전으로 채운다는 계획도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이 엑스-에너지(X-energy)의 캄 가파리안 회장과 올해 4월 진행된 오찬 회동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박 회장의 주요 전략인 선진 기업과의 업무협약(MOU)이 힘을 보탠다. 2019년 국내 투자자들과 미국 원자력 기업 뉴스케일파워에 1억400만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1월에는 미국의 4세대 고온가스로(High Temperature Gas-cooled Reactor) SMR 개발사인 엑스-에너지(X-energy)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핵심 기자재 공급 협약도 동시에 체결했다.

관련 업계가 전망하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자력 수주 실적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1조2000억원이다. 첫 SMR 해외 수주는 발전사 UAMPS가 미국 아이다호주에 추진 중인 프로젝트로 전망된다. 지난해부터 주단소재, 주기기 등의 제작에 착수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뉴스케일파워의 미국 첫 SMR 발전소에 사용할 원자로도 두산에너빌리티가 공급한다. 지난달에는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관련 인공태양 프로젝트에 직접 설계·제작한 기기인 가압기를 출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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