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의 유산, SK 바이오는 지금]"다 버려도 신약은 버리지 말라" 유언이 사업이 되다①1987년 연구소 설립, 선경합섬·유공 '바이오 중심축'…투트랙 신약사업 눈길
최은진 기자공개 2023-07-24 11:26:39
[편집자주]
선대회장 시절 시작한 바이오 사업은 36년이 지난 지금 SK그룹의 핵심사업으로 급부상했다. 섬유·석유화학에서 파생할 수 있는 신사업이 '신약'이라는 선대회장의 선구안이 연구개발 DNA를 빚어냈다. 언제 돈이 될지도 모를 신약에 대를 이어서까지 꾸준하게 매진할 수 있었던 배경도 그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의 제약과 백신, SK㈜의 신약과 CDMO 등 오늘날 SK그룹의 양대 바이오 사업을 조명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20일 15:58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다 버려도 (신약)연구소는 버리지 말아라" 작은 섬유회사를 SK그룹으로 일군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언이다. 그의 신약에 대한 꿈은 여전히 유지(遺旨)로 이어지며 SK그룹 성장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가족력 있는 오너일가에게 제약바이오는 단순한 사업 그 이상의 의미였을까. SK그룹의 모태를 만든 최종건 창업회장이 48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하고 뒤를 이은 최종현 선대회장 역시 같은 질병으로 68세에 세상을 떠났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신약연구소나 제약사업은 손대지 않았을 정도로 꾸준한 지원과 애정을 보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유지라는 본류는 두개의 큰 물줄기로 갈라져 새로운 가치를 파생하고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 제약 및 신약개발 시작…최초의 항암신약 개발 성과
SK그룹은 잘 알려져있듯 섬유사업에서 시작했다.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석유화학으로 발판을 넓히며 그룹의 골격을 갖췄다.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의 토대를 닦으며 발전해왔다. 중심엔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이 있다. 이는 나중에 합병 등의 절차를 거쳐 SK케미칼의 모태가 됐다.
제약사업을 시작한 건 1987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경영하던 시절이다.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이 작고한 지 14년 뒤다. 그룹의 핵심동력이던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무렵에 신약과 제약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이 섬유 관련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다.
일본 등 선진국의 화학기업들이 제약을 함께 영위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SK그룹의 섬유화학 기술의 모태가 된 일본 화학업체 데이진도 제약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자극이 됐다.
1987년 선경인더스트(구 선경합섬), 지금의 SK케미칼 내 '생명과학연구실'을 설립하면서 바이오 사업의 첫 삽을 떴다. 연구소 준공은 1989년이다.
1987년 12월 안산에 있는 삼신제약 영업권을 인수했다. 대기업이 제약업에 진출한다는 업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 인수합병(M&A) 전략을 썼다.
이듬해인 1988년 삼신제약의 영업권을 바탕으로 선보제약을 설립하며 제약사업의 닻을 올렸다. 선보제약, 선경의 보배가 되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만큼 신사업으로써 '제약'에 힘을 실었다.
한국은 단 한건의 신약도 없었던 건 물론 임상이나 규제 같은 룰(Rule)도 없었다. 그럼에도 SK그룹은 제약사업에 진출한 지 10년도 안 된 1992년 은행잎 혈액순환개선제 '기넥신', 1996년 TDDS(경피 투과형 약물전달 체계)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관절염 치료 패취제 '트라스트' 등을 개발했다. 그리고 1999년 한국 제약업계 100여년 역사상 최초로 항암 신약인 '선플라'를 만들었다. 2001년에는 천연물 신약 1호인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를 출시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바이오 사업에 대한 의지는 분명했다. SK케미칼 외 바이오 사업의 또 다른 축을 구축한 것을 통해 그 의지는 드러난다. 또 다른 축이된 건 유공, 지금의 SK㈜다. 역시 그의 지시에 따라 1993년 유공 내 대덕기술연구원을 세워 신약연구팀을 꾸렸다. 연구원 준공은 1995년이다.
대덕연구원은 여러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R&D 기능을 한데 모은 곳이다. 석유화학 및 정밀화학, 첨단소재 등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제품 R&D 기능을 모았다. 신약개발 역시 석유화학의 연장선에서 할 수 있는 사업으로 판단하고 신약기능을 넣었다.
선경합섬 즉 SK케미칼이 생약 및 천연물 중심의 신약이었다면 대덕연구소는 화학 중심의 신약개발이 주목적이었던 셈이다. 포인트도 달랐다. SK케미칼이 대중적인 질병을 타깃한다면 유공은 중추신경계질환에 초점을 맞췄다.
성과는 즉각 나타났다. 1996년 수면장애 신약 솔리암페톨(미국·유럽 제품명 수노시)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문턱을 넘어 임상시험승인(IND)을 획득했다. 이는 2011년 기술이전 과정을 거쳐 2019년 판매승인을 받았다. 2005년엔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를 개발해 미국 FDA로부터 IND를 승인 받았다.
◇석유화학 사업에서 파생된 신사업, '안 돼도 될 때까지' 정신
1998년 작고한 최종현 회장의 바통을 넘겨받은 오너 2세들도 그의 유지를 이었다. 그가 유언으로 신약연구를 버리면 안된다는 주문이 정신으로 이어지면서다.
2000년 외환위기 시절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당시 SK그룹도 구조조정 및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섬유사업을 분리해 합작사로 만든 건 물론 그룹의 모태가 된 수원공장도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제약사업에는 오히려 힘을 실어주며 키우는 데 주력했다.
2000년 바이오벤처 인투젠을 설립한 데 이어 2001년 백신 및 혈액제제 기업 동신제약을 인수했다. 이는 SK플라즈마의 혈액제 사업,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사업으로 이어졌다. 2007년 설립한 지주사 SK㈜에서 물적분할을 해 2011년 SK바이오팜을 만들었다.
이 같은 SK그룹의 초기 제약 및 신약사업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선 최종현 선대회장이 단순히 '실적'에만 초점을 두고 뛰어든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신약개발에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신약만이 아닌 제약사업을 병행한 것 역시 이를 뒷받침 할 캐시카우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약사들이 갖고 있는 의료현장 및 마케팅 노하우가 기술개발에 응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경영 포인트다.
또 투트랙으로 바이오 사업을 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섬유합성 과정이 식품제조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생약 및 천연물 신약을 하는 SK케미칼, 그리고 화학을 기반으로 한 SK㈜ 두개의 큰 줄기가 있다. 각각 적응증도 달리하며 타깃 분야를 분명히 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SK그룹 내부에선 이런 얘기도 있다. 신약이 그룹 내 또 다른 중심축인 '유전'과도 같은 사업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SK가 잘 할 수 있는 DNA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약도 유전처럼 신기루로 평가받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안 되면 다시 해보는 될 때까지 하는 정신, 신약개발과 맞닿아 있다. '절대 신약의지를 꺾지 말라'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언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SK그룹 관계자는 "SK의 바이오사업은 현재 SK케미칼과 SK㈜과 양대축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정신은 최종현 선대회장부터 이어진 것"이라며 "섬유사업을 하던 선경합섬, 화학사업을 하던 유공에서 파생된 사업이 지금의 그룹 바이오 사업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SK그룹의 바이오사업은 첫 신약이라는 결과물도 그렇지만 아무 인프라도 규제도 없던 불모지에서 새로운 룰과 절차, 그리고 산학연을 잇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여를 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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