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바이오텍의 생존전략]빅바이오텍 위해 넘어야 할 첫 관문 '엑시트'성공한 모든 바이오텍 창업주 아닌 '시스템'으로… "기형적 문화론 자생력 담보 어려워"
최은수 기자공개 2023-07-31 15:02:12
[편집자주]
바이오벤처는 2000년대 들어 출현했다. 1990년대 벤처 붐 이후 10년여가 흐른 시점이다. 업계는 이들을 1세대 바이오텍이라고 부른다. 벤처 선봉에 섰던 IT 붐은 '버블'이라는 이름으로 옥석가리기가 이뤄졌다. 하지만 바이오벤처는 20여년째 아직도 벤처 이름표를 달고 '생존' 중이다. 이제 1세대 창업주들이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새로운 살길을 모색한다. 매각, 아이템 변경 등 전략도 제각각이다. 전환점에 선 1세대 바이오텍의 전략과 방향을 들여다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27일 07: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른바 글로벌 '빅바이오텍'은 그들마다 인적구성, 개발 영역이 모두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고의 기간을 거쳐 글로벌 신약을 출시했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거버넌스를 갖췄으며, '창업주가 성공적으로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했다는 게 공통분모로 꼽힌다.글로벌 바이오텍이라고 반드시 신약개발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유수의 업체가 명멸을 반복하는 역사 속에서, 성공했거나 살아남은 모든 빅바이오텍은 창업주가 아닌 맨파워로 버텨왔고 오너십 대신 시스템을 딛고 일어섰다. 창업주의 성공적인 엑시트를 꿈꾸기 어려운 국내 바이오텍 시장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지점으로 보인다.
◇결정적 순간 K바이오텍 역사적 빅딜 무위로… 기저엔 '뿌리깊은 엑시트 불안감'
알테오젠 창업주 박순재 대표와 오리온과의 딜이 무산된 이후 업계에선 역사상 손꼽힐 만한 사건이 무위로 돌아간 데 대한 원인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알테오젠은 국내에서 연착륙에 성공한 대표적인 바이오텍이다. 두 건의 조단위 라이선스아웃(L/O)을 성사하며 2014년말 상장 당시 약 1300억원이던 시가총액은 약 10년만에 20배 가량 뛰었다.
알테오젠은 대규모 L/O가 나온 2019년과 2020년엔 흑자전환을 기록하며 성공한 국내 바이오텍의 모범사례로도 손꼽혔다. 더불어 박 대표가 고령이고 알테오젠이 보유중인 플랫폼 기술은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시장에선 꾸준히 성공적인 엑시트 가능성이 점쳐져 왔다.
그러나 박 대표는 최종 국면에서 돌연 딜 중단을 결정했다. 시일이 꽤 지난 지금까지 알테오젠 측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고, 당사자인 박 대표 또한 외부와의 접촉이나 소통을 꺼리고 있다. 다만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번 딜이 무산된 가장 큰 기저엔 박 대표가 느낀 '엑시트 자체'에 대한 부담이 자리한 것으로 확인된다.
비단 박 대표만 엑시트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국내 바이오텍 업계에선 창업주의 엑시트 자체를 시장과 주주에 대한 '역린'으로 치부하는 실정이다. 특히 회사와 창업주를 동일시하는 독특한 문화가 맞물리며 맹목적인 외면을 일으키는 상승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딜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무렵 알테오젠이 위치한 대전 소재 바이오텍 대표 모임에서도 이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를 두고 업계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냐 '먹튀'로 기록될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안다"며 "결과적으로 세간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 박 대표가 부담을 느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엑시트에 대한 근거는 없지만 여러 형태로 강화된 불안감은 오히려 시장 성숙과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해외 대부분의 바이오텍들이 창업주와의 아름다운 작별 이후 전환점을 맞았고 지속 성장세를 이어온 것과도 대치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K바이오텍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지금 필요한 주문 "눈을 들어 로버트 랭거를 보라"
국내보다 앞서 바이오텍의 산업이 싹튼 해외, 특히 바이오의 본고장인 미국의 경우 창업주의 엑시트를 옥죄는 문화 자체가 없다. 창업주의 엑시트는 자연스럽게 M&A에 내재된 선순환을 일으키고, 이 화학 작용이 장기적으로 회사 성장을 위한 기폭제가 된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모더나 창업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랭거 교수의 연쇄 창업 사례가 꼽힌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화공과 교수인 그는 40개가 넘는 스타트업 창업에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COVID-19) 백신을 개발한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Moderna)의 창업멤버이기도 하다.
모더나 역시 플래그십벤처스라는 미국 소재 벤처캐피털(VC)가 주도적으로 기획 창업한 회사다. 이 기획 창업 물결 속에서 랭거 박사도 '창업주'로서 적극적으로 창업에 기여했고, 이미 모더나 이전에 성공적으로 십여 개의 회사를 매각한 이력도 있다.
국내 바이오텍 환경은 일종의 기획 창업이 어려운 축에 속한다. 미국과 달리 제도나 문화적, 인적자원의 한계로 앞서와 같은 VC 주도 모델을 구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VC의 역할이 재무적투자자(FI)로 제한되는 점, VC 주도 모델을 지탱할 바이오텍 전문경영인 인재 풀(Pool) 또한 부족한 점 등 여러 원인이 얽히고설킨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이유로 창업주의 엑시트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은 업계와 국내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이다. 바이오텍의 올바른 성장은 능력있는 창업주를 뒷받침할 투자자들의 자본, 적절한 거버넌스 구축이 어우러지며 나온다. 그러나 현재로선 창업주의 이름값에 의지하는 제왕적 또는 오너십 형태의 거버넌스만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상장 바이오텍 대표는 "국내 바이오텍 신약개발 성과가 지지부진한 기저엔 새 최대주주와 퀀텀점프를 노릴 기회 자체가 엑시트 금기 문화로 인해 거세된 이유도 있다"며 "국내 바이오 생태계는 끊임없이 빅바이오텍의 탄생을 염원하지만 여건, 성과, 문화 성숙도 모두를 따져보면 초창기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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