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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질서' 경계하는 현대차, 미국 충전소 연합 SDV 전환 앞두고 데이터 쟁탈 차단도

허인혜 기자공개 2023-07-31 11:29:16

이 기사는 2023년 07월 28일 10: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전자 기업들에게 독자적인 충전 방식은 자신감이다. 우리 회사의 기기를 쓰려면 우리의 질서를 따르라는 선언이자 기준점을 세우겠다는 의지다. 세계적 라이벌인 애플과 삼성의 예가 그렇다.

삼성은 휴대폰 갤럭시 시리즈에 표준 충전 기준인 USB-C타입을 일찌감치 차용했지만 애플은 자체 규격인 라이트닝 단자를 써왔다. 유럽연합(EU) 규제에 따라 충전 단자가 통일될 날이 머지 않았지만 오랜기간 자체 충전 기술은 애플의 상징이기도 했다.

충전이 중요해진 영역은 또 있다. 전기차 시장이다. 이 분야에서는 글로벌 1위인 테슬라가 애플과 비슷한 전략을 펴고 있다. 테슬라도 북미 충전 표준이지만 사실상 테슬라의 전유물인 NACS를 활용한 '수퍼차저'를 미국 곳곳에 설치했다.

테슬라의 충전 규격은 본래 미국과 유럽의 완성차 기업들이 활용했던 합동충전시스템(CCS)을 집어삼키는 중이다. 규모를 키우며 기준점 자체가 바뀌고 있다. 테슬라의 장악력이 커지는 와중 현대차가 7개 완성차 업체와 연합을 꾸려 전기차 충전소를 늘리기로 했다.
현대차와 기아 등 7개 메이저 완성차 기업은 미국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에 6개' 불과했던 수퍼차저에 맞불 놓은 이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 BMW, 제너럴모터스(GM), 혼다,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 등 7개 완성차 기업은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한 조인트벤처에 최소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 도시와 고속도로 인근에 3만여 개의 고속 충전소를 세운다는 목표다.

왜 지금일까. 테슬라가 수퍼차저라는 전용 전기차 충전 기준을 들고 나온 때는 2012년이다. 테슬라 모델 S의 매력 포인트로 삼은 게 태양광을 통한 평생 무료 충전이었고, 무료 충전을 이뤄주는 매개체가 충전기 수퍼차저다.

그런데 '평생 무료'로 고객을 공략하기에 전기차 충전소가 너무 적었다. 테슬라가 처음으로 세운 전기차 충전소는 달랑 여섯 곳이다. 그마저도 캘리포니아 인근에 몰려있었다. 당시 테슬라의 꿈도 참 소박했다. 캘리포니아를 잇는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 이듬해 큰 마음을 먹고(?) 발표한 계획은 여덟 곳으로 늘어난 전기차 충전소를 세 배 더 짓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테슬라는 전세계 약 5000곳의 수퍼차저 거점에서 4만5000개 이상의 충전기를 운영 중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에서 10년간 공격적으로 충전소를 늘려온 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여섯 곳에 머물던 수퍼차저는 이제 한국에서만 100곳이 넘는다.
국내에 설치된 테슬라 수퍼차저 충전기 위치. 사진=테슬라 홈페이지

◇테슬라, NACS 기술공개 속내는

규모도 규모지만 진짜 위기감을 고조시킨 건 기준점의 변화다. 테슬라가 이제 규모의 장악을 넘어 기준점을 선점하기 시작하자 위기감이 커졌다.

본격적인 경쟁의 서막은 지난해 말 테슬라의 선언부터 시작됐다. 테슬라는 2022년 11월 NACS 충전 방식 기술을 타 기업에게도 공개하기로 했다. 미국의 충전소 지원금을 받기 위한 조치였지만 그때쯤엔 독자 기술을 공개해도 오히려 테슬라에게 유리한 선택이었다.

테슬라가 NACS를 시장에 내놓은 시기가 2012년이다. 벌써 10년째 고수해온 기술로 이 세월동안 테슬라는 전기차 영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뒀다. 충전 기술을 공개해 아예 전기차 업계의 기준점이 된다면 차후 충전기술을 통일할 때 테슬라가 규격을 바꾸는 기회비용을 미리 방지할 수도 있었다.

테슬라 수퍼차저의 미국 고속 충전소 점유율은 60%다. NACS가 테슬라의 독자 충전 규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전소 점유율이 곧 테슬라의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테슬라의 미국 시장 전기차 점유율도 60%다. 반대로 테슬라가 아닌 완성차 기업의 전기차 오너들이 나머지 40% 고속 충전소를 이용하는 불편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충전소를 즉각 늘릴 수 없다면 고객의 불편을 잠재우고 판매량을 늘리는 비책은 결국 테슬라의 충전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특히 테슬라 고객은 CCS 어댑터를 활용해 두 가지 방식의 충전을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GM과 포드, 전기차 기업 리비안은 이미 NACS 충전방식을 활용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까지 NACS 방식을 추가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국내 초고속 충전소. 사진=현대차그룹

◇테슬라의 '충전 기준' 경계하는 현대차, 진짜는 데이터 싸움?

현대차와 7개 완성차 기업들이 노리는 건 기준의 재정립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봐도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에서 한 기업의 독자 기술이 가장 중요한 분야의 기준점이 되는 건 다른 기업들에게 너무 불리하다. 현대차 등의 목표 신설 충전소는 3만곳인데 수퍼차저는 미국 내 2만2000곳이 설치돼 있다. 계획대로라면 수치적으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

7개 기업의 협업은 지금이지만 이전부터 완성차 기업들은 충전소 확대 사업에 눈독을 들여왔다. 특히 7개사와 협업하게 된 아이오니티는 현대차그룹의 오랜 파트너이기도 하다. 현대차 등은 일찌감치 아이오니티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해 왔다. 아이오니티의 태생부터가 2017년 완성차 업체들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7개사들은 다만 충전소에 CCS 외에 테슬라식 NACS 충전기도 함께 설치한다. 충전소 확대로 노릴 수 있는 충전 수익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등의 전망에 따르면 국제 전기차 충전 시장의 규모는 10년 내로 약 160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충전소로 모을 수 있는 데이터도 중요한 요소다. 사실 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테슬라의 수퍼차저를 이용하려면 차후 테슬라의 차주가 아니라 NACS 방식을 차용한 다른 브랜드의 차를 타고 있더라도 테슬라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야 한다. 테슬라가 이 앱을 통해 수집하는 정보는 충전 관련뿐 아니라 이용자의 사용 패턴이나 완성차의 엔진제어 기능까지 적잖다.

현대차는 2025년부터 본격적인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시대를 선포했다. 완성차의 중심 축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전환된다는 선언이다. 핵심은 모든 차종에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적용한다는 것인데 빅데이터를 활용한 초개인화 서비스를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테슬라의 신(新) 질서를 거부하는 이유다.
현대차의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 사진=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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