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신관치 시대]위기의 금융산업…압박 수위 높이는 정치권[총론]①과거와 달라진 '타이밍·컨텐츠'…이자장사 비판 앞에 '악의축'된 금융사
고설봉 기자공개 2023-11-20 08:11:29
[편집자주]
금융산업을 둘러싼 정치 권력의 압박이 강해졌다. 과거처럼 낙하산 인사를 하거나 직접 경영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지배구조 개선과 상생금융 요구 등 비판의 형태를 띈 메시지를 통해 금융사를 압박하고 있다. 시스템적으로 직접 관치를 할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우회적인 방식으로 압박을 계속하는 이른바 신관치가 진행되고 있다. 관치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적절한 견제는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지만 시장 질서를 흐트려선 안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벨은 신관치라 부를 수 있는 현재 금융 환경을 진단하고 그 속에서 금융산업 발전 방안을 모색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09일 07: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 마디에 금융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정치적 수사가 만들어낸 파장은 금융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이 크다. 자금의 조달과 운용이란 금융산업 근간과 시장 논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생금융으로 포장된 포퓰리즘적 금리감면 요구가 계속되면서 은행들의 고민이 커졌다.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금융권에 대한 신관치시대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지금까지 정부의 압박은 '메시지'에 머물고 있다. 관료 출신 인사들이 은행 등 금융사 지배구조에 대거 투하되던 과거의 관치금융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금융사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여전하다. 명확한 가이드 없이 '알아서 기라'는 압박만큼 불편한 것도 없다.
금융업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과도한 이익, 정부가 보장해주는 라이선스 산업, 세습적인 지배구조 등 비판받을 대목도 많다. 하지만 금융 시장 시스템을 흔드는 과도한 개입은 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견제는 하되 시장은 발전시키는 신관치에 맞는 적절한 가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종노릇’의 파장…잇달아 은행권 조이는 당국 수장들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은 이전과 다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권 초기 등장했던 금융권에 대한 당부와 요구의 경계에 선 발언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 금융권에 대해 더 강경하고 명확한 워딩을 내놓으면서 그 이면에 숨은 또 다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눈치게임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고금리 국면이 이어지며 표심이 악화하자 은행들의 ‘이자장사’를 비판하며 화살을 금융권으로 돌린 모양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즉각 대통령에 보조를 맞췄다. 지난 6일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권의 '역대급 이자이익'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금융권의 고통 분담 필요성을 독려하고 나섰다. 수익을 환원하거나 인위적으로 수익 발생 자체를 억제하라는 것이 골자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오전 금융협회장들과 만나 "최근 금리상승 과정에서 금융권 순익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며 "그 이익의 원천이 소비자 편익 증대를 위한 혁신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단순히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수입 증가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대 최대규모의 이익에 걸맞게 금융협회가 중심이 되어 금융권의 한 단계 발전된 사회적 역할을 이끌어 주길 기대한다"며 "특히 국가경제의 허리를 지탱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줄여줄 수 있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도 같은 날 오전 9개 회계법인 CEO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올해 은행의 이자 수익이 아마도 60조원 수준에 달해 역대 최고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며 "3분기 영업이익을 비교해 보자면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를 다 합친 것보다도 영업이익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같은 경우 고정금리 베이스로 금리 변동으로 인한 충격은 위험 관리에 실패한 은행들이 받아야 되는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금리 변동으로 인한 충격을 위험 관리를 할 수 없는 개인들이 온전히 받아야 되는 구조"라며 "정부 당국이 갖고 있는 고민이 여기에 있으며 이런 고민이 매도돼야 되는 건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를 불똥을 우선 피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최대한 목소리를 내지않고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 등 금융 당국에서 내놓을 상생금융 청구서에 어디까지 보조를 맞춰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와 당국의 비판과 다양한 권고에 대해 내부적으로 대응방안이랄까 이런 것도 세우고 있지 못하다”며 “당국에서 상생금융 등 방안을 짜고 있는 가운데 개별 금융사가 나서 어떤 의견을 내거나 할수 없는 상태로 상황을 관망하면서 정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다른 신관치…타이밍도, 방식도 달라졌다
금융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 금융 당국의 압박은 과거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방식과 강도 등에서 이전과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금융사들의 셈법은 더 복잡해졌고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신관치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권력이 금융산업에 개입하는 타이밍이다. 기존의 관치에 비해 반박자 느리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 관치의 모습은 지금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밀실에서부터 빠르게 논의가 이뤄지면서 낙하산 인사를 앉히거나 직접 경영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선 금융사 CEO 인선 등 문제에서 직접적인 워딩을 내놓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뒷짐을 지고 있다 뒤늦게 불만을 표시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불만의 표출 방식도 직접적이지 않다. 제도나 체계 등이 잘못됐다거나 수익이 과도하다는 식으로 우회적인 비판을 공개적으로 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권의 금융권에 대한 스탠스는 관치를 하고 싶지만 실제 관치를 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원하는 것 같다”며 “사전적이고 노골적으로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또 지나고 보면 개별 금융사에 원하는 것은 꼭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산업을 경제 시스템의 마중물이나 안전장치로 활용하는 방식도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금융회사의 자본을 재원으로 다양한 곳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방식은 똑같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자금을 모으는 방식에선 큰 차이가 있다.
과거 정권에선 경제 활성화와 위기 돌파 등을 위해 금융권의 동참을 촉구하는 모습으로 금융사의 이익을 추렴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선 금융사를 부정한 이익을 내는 집단으로 몰고 가려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선’인 정부가 ‘악’인 금융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자본을 출연한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모습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처럼 금융사를 악의 축으로 만들어서 자금을 출연해 간 적은 없었다”며 “기존에는 함께, 동반의 의미가 강했는데 말 그대로 금융권이 국민과 국가와 상생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형태로 다양한 금융지원 방안을 유도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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