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ASML 본사 3번째 방문…EUV 확보 총력 삼성전자·ASML, 1조원 공동 투자…차세대 노광 기술 개발 초점
김도현 기자공개 2023-12-14 13:10:39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3일 15: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 경쟁력 향상에 속도를 낸다. 이를 위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쟁탈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EUV를 독점하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3년새 3차례 찾을 만큼 정성을 다하고 있다.양사는 한국에 EUV 공동연구소(조인트 랩)를 짓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추후 차세대 EUV(하이NA) 적용 및 설비 확보 과정에서 해당 랩이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SK 회장과 함께한 세 번째 방문, EUV 뭐길래
이 회장은 이번 ASML 방문에는 윤석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함께 했다. ASML의 중요성과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ASML 주력은 반도체 노광 분야다. 노광은 반도체 8대 공정 중 하나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단계다. 빛을 쏘아 패턴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전체 생산 시간과 비용에서 각각 60%, 35% 내외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공정 미세화로 노광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1984년 네덜란드 필립스와 ASMI가 합작 설립 회사인 ASML은 목재 건물에서 사업을 시작할 만큼 당시 존재감은 미미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일본 니콘과 캐논도키가 관련 시장을 주도했다.
2000년대 들어 ASML은 노광 기술이 불화크립톤(KrF)에서 불화아르곤(ArF)으로 전환하던 시점에 영향력을 키웠다. 이때 일본 회사들은 자국 반도체 시장이 흔들리면서 디스플레이 쪽에 역량을 집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ASML을 만든 건 EUV다. EUV는 ArF 대비 13배 이상 얇은 파장으로 정밀 패턴 구현에 최적화됐다. 다만 EUV는 X선, 감마선 가시광선 등과 달리 지구상에 없는 파장이었다. 모든 물질을 흡수하고 공기 중에 노출 시 사라지는 성질이 있다. 그만큼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의미다.
사실 EUV 개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논의가 이뤄졌으나 난도가 워낙 높고, 현실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많았었다. 이 과정에서 니콘, 캐논도키 등은 EUV에서 손을 뗐고 유일하게 ASML만 연구를 지속했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와 오랜 기간 협력을 이어간 끝에 EUV 상용화에 성공했고, 2017년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도입한 바 있다.
이후 TSMC와 SK하이닉스가 뒤를 이었고 인텔, 마이크론, 난야테크놀로지 등도 EUV 적용을 공식화했다. 현재 대당 2000억원을 호가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공급 불균형 상태다.
ASML은 다음 버전인 하이NA EUV 장비를 개발 중이다. 해상력(빛을 모으는 능력의 단위)을 0.33에서 0.55로 높인 것이 특징이다. 집광 능력이 향상돼 더 선명하고 얇은 회로를 그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025년 양산 예정인 이 제품은 대당 4000억~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인텔을 시작으로 삼성전자, TSMC 등이 구매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역시나 수요가 공급보다 크다. 이에 따라 당분간 ASML의 '슈퍼을' 지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추가 투자 예고, 삼성전자와 공동연구소 설립
윤 대통령과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이 회장, 최 회장 등이 방문한 ASML 본사에서는 3건의 업무협약(MOU)이 이뤄졌다. 우선 양국 정부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활용해 대학원생에 현장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한국-네덜란드 첨단반도체 아카데미'를 신설하기로 했다. 두 나라에서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 2월 네덜란드에서 첫 교육이 개시된다.
삼성전자와 ASML은 약 1조원을 투입해 하이NA 기반으로 초미세 공정을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개발(R&D)센터'를 우리나라에 설립하기로 했다. ASML이 반도체 제조사와 공동으로 해외에 선단 공정을 개발하기 위한 R&D센터를 세우는 건 처음이다.
해당 연구소는 수도권 지역에 건설될 예정이다. ASML이 삼성전자와 손을 잡은 건 메모리 1위 국가인 한국에 투자하는 것이 차세대 노광 기술 확보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설비소재 협력사의 성장과 반도체 인재 육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이는 국가 반도체 경쟁력 확보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별개로 ASML은 경기 화성에 2025년까지 2400억원을 들여 '뉴 캠퍼스'를 짓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근거리에서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SK하이닉스의 경우 ASML과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개발' MOU를 맺었다. EUV 설비 내부의 수소를 태우지 않고 재활용할 시 전력 사용량이 20% 줄고, 연간 165억원 비용이 감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파운드리부터 메모리까지, EUV 영역 확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계에서 사용되던 EUV는 메모리 부문으로 응용처가 넓어졌다. 삼성전자를 기점으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까지 EUV 도입에 나서면서다. 궁극적으로 미세공정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함이다. 실제 10나노급 4세대(1a) D램부터 일부 레이어에 EUV 기술 활용이 본격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0년간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초미세공정을 개선하고 있다"며 "차세대 반도체 구현을 위해서는 EUV 기술 확보가 핵심이라는 판단에 따라 2000년대부터 ASML과 초미세 반도체 공정 기술 및 장비 개발 협력을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는 등 삼성전자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ASML로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핵심 고객이기 때문에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화성사업장에 이어 평택사업장에서 EUV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연내 완공 예정인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에도 EUV 장비가 들어선다. 중장기적으로 대수를 늘려 고객 수요에 대응할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총수가 협력사 공장을 연이어 찾는 건 이례적"이라며 "ASML은 반도체 공급망 내 존재감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 회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이 앞으로도 자주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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