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11일 07시1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문화사업을 떠올리면 흔히 콘텐츠 중심의 소프트파워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는 문화사업의 절반에 불과하다. 인프라 등 하드파워도 문화사업을 확장하는 데 필수적이다.여기에 진심을 다했던 기업이 바로 롯데그룹이다. 영화관, 뮤지컬 극장, 콘서트홀, 테마파크까지 수십년에 걸쳐 서울 한복판에 '엔터테인먼트 단지'를 구축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오너의 의지 덕분이다. 특히 뮤지컬사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20~30년 전, 뮤지컬 <라이온킹>을 보고자 해외 한 극장에 방문했던 고 신격호 회장은 극의 막이 오른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자리를 떴다. 그리고 결심했다. 한국에 <라이온킹>을 들여와 공연을 해야겠다고. 또 확신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결심은 대규모 투자로 이어졌다. 당시에도 평당 1억원 넘던 서울 잠실 노른자위땅에 한국 최초의 뮤지컬 전용 극장을 세웠다. 20년 전인데도 건설비용이 450억원가량 들었다. 당시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에 버금가는 액수였다.
수익을 위해서라면 결코 택할 수 없는 선택지다. 그 땅에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지었더라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뮤지컬만을 위한 극장을 세웠고 극장 이름도 손수 지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를로테의 이름을 따서 ‘샤롯데씨어터’라고 명명했다.
마침내 고 신 회장은 2006년 샤롯데씨어터의 개관작으로 <라이온킹>을 무대에 올렸다. 일본 극단이 공연 제작을 맡았기에 한국 문화계가 초반에 거세게 반발했지만 끝은 화려했다. 국내 최장기 공연, 최다 관객 동원 등 굵직한 신기록을 연달아 세웠다. <라이온킹>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 신 회장의 혜안이 빛나던 순간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일본 문화계의 유력인사를 사귀면서 문화사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당장 눈앞의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성장성 좋은 사업을 모색한 결과였다. 뮤지컬은 고 신 회장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해답이었다.
고 신 회장이 작고하고 경영권의 세대교체가 이뤄졌지만 뮤지컬산업에서 롯데그룹의 아성은 공고했다. ‘가장 공연을 올리고 싶은 극장’으로 샤롯데씨어터는 해마다 손에 꼽혔다. 또 <오페라의 유령>, <헤드윅> 등 뛰어난 작품에 롯데그룹이 적극 투자하면서 업계의 큰손으로도 자리매김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본을 투자했을 때 문화의 미래가 열렸다. 왕족, 귀족이 문화의 최전성기를 이끈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뮤지컬사에서 롯데그룹도 그런 역할을 했다. 롯데그룹 오너의 하드파워가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위한 마중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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