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정비사업 열전]표준계약서 도입에 시장 개화, 업계 점유율 전쟁①제도 7년 만에 걸림돌 해소 '수주 릴레이'…과열 경쟁에 전략 설정 과제
정지원 기자공개 2024-03-18 07:46:29
[편집자주]
부동산신탁사들 사이에서 신탁방식 정비사업 수주 열풍이 불고 있다. 2016년 제도 도입 이후 열기가 가장 뜨겁다.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할 필요성이 커진 것도 요인이다. 업계 숙원이었던 표준계약서 도입이 이뤄지면서 사업 추진 동력도 생겼다. 향후 치열한 수주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선두에 나선 부동산신탁사들의 수주 전략과 사업 경쟁력을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3일 11: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탁사가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을 맡는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제도 도입 7년 만에 개화(開花)기를 맞았다. 업계의 숙원이었던 표준계약서가 도입되는 등 사업지 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영향이다. 신탁사로서 그간의 불신을 털어내고 수주에 활발히 뛰어들 수 있게 됐다.이미 시장은 성장을 시작했다. 지난해 10개 안팎의 신탁사가 보수액 기준 역대 최대치인 2300억원 규모 사업을 수주했다. 연초부터 대다수 신탁사가 정비사업 수주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내보인 만큼 올해는 전체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회사별 전략도 중요해졌다. 업계 내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정비사업 성공 경험, 자금조달 경쟁력 등 각 사의 강점을 기반으로 사업장 공략에 나섰다. 사업 수행 경험이 미진한 곳들은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총 36건, 보수액 기준 2300억원 규모 수주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으로 본격적으로 시행된 제도다. 부동산신탁사들이 재건축·재개발에서 조합을 대변해 사업 추진을 돕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사업이다. 조합은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를 통해 빠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기존엔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신탁사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신탁사들 사이에선 오히려 개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차입형 토지신탁이나 개발 신탁보다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 신탁사의 책임을 강화해 수수료율을 높인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이 더 유행이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도 신사업의 일환으로 자리 잡았지만 수주를 가로막는 요인들이 산재했던 탓에 시장이 보다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2022년부터 건설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전환점을 맞았다. 금리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공사비가 치솟았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공사가 더뎌지는 상황이 생기자 조합들이 신탁사 참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신탁사의 정비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시공사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 평가 받을 수 있게 됐다.
신탁사들 역시 먹거리가 급감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사업은 호황기 때 가늠하지 못했던 각종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사실상 존폐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리스크가 더 큰 차입형 토지신탁 수주를 늘리기도 어려웠다. 결국 정비사업이나 리츠 등 다른 사업들에 눈을 돌려야 했던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이 맞물리면서 신탁사의 정비사업 참여가 늘고 있다. 지난해 사업시행자 방식 14건, 사업대행자 방식 22건을 더해 총 36건을 수주했다. 보수에 해당하는 수주액이 2313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수주액은 제도 도입 후 통상 1000억원대를 유지해 왔고 2021년 처음 2000억원대를 돌파했다.
◇국토부 시행규정 확정…신뢰도 제고, 사업 추진 '훈풍'
올해도 비슷한 시장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업계의 숙원이었던 표준계약서 등이 지난해 말부터 도입된 영향이다. 사업의 가장 큰 제약사항이 제거된 만큼 신탁사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뛰어드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말 신탁방식 정비사업과 관련한 표준계약서 및 표준시행규정을 배포했다. 사업지 주민들과 신탁사간 불공정한 계약과 사업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신탁방식 정비사업 수행의 기본 틀을 제시했다는 의미다.
표준계약서가 생기기 전에는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미흡했다. 그간 몇몇 신탁사들이 활용해 온 계약서에는 주민들 모두가 동의하지 않으면 신탁 계약 해지가 불가능하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사실상 독소조항이 섞이기 쉬운 환경이었던 셈이다. 신탁사의 업무 태만이나 신탁 재산으로 사업비를 조달하는 등 각종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는 상태다.
이 같은 문제점들로 인해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점은 신탁사들에게도 고민거리였다. 표준계약서 및 표준시행규정 도입으로 신탁사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해진 만큼 업계는 주민들 사이의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불신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표준시행규정에는 △신탁계약 해지 △주민 재산권 보호 △사업 관리 △사업비 조달 △주민 참여 △사업종료 기한 △신탁보수 등이 주 내용으로 담겼다. 가장 불공정한 문제로 꼽혔던 신탁사 선정 절차나 신탁계약 해지 조건이 구체화됐다. 현장 전문 인력 배치와 주민이 신탁한 부동산에 대한 보호도 강화됐다.
연초부터 신탁사들의 정비사업 수주가 잇따르고 있다. 코람코자산신탁은 얼마 전 부산 명장2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의 사업시행자로 지정고시됐다. 대한토지신탁과 코리아신탁은 인천 십정5구역 재개발사업의 공동 사업대행자로 나서게 됐다. 무궁화신탁은 군포 금정2구역 재개발, 한국토지신탁은 노원 상계주공10단지 재건축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전통 강호 한토신·코람코·대토신 등…신생사도 도전장
코람코자산신탁, 대한토지신탁, 한국토지신탁 등이 신탁방식 정비사업에서 전통의 강호로 꼽혀 왔다. 코람코자산신탁과 대한토지신탁은 사업을 매듭지은 경험이 업계 내 가장 많다. 한국토지신탁의 경우 1000세대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이 외 한국자산신탁, KB부동산신탁, 우리자산신탁, 신한자산신탁, 하나자산신탁, 교보자산신탁 등도 신탁방식 정비사업 수주를 올해 주요 사업 과제로 삼았다. 곳곳에서 수주전 참여 소식을 알리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영업을 시작한 신생 부동산신탁사 3개 회사도 적극적인 정비사업 참여를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말 대신자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신영부동산신탁이 손을 맞잡았다. 이들 회사들도 몇몇 수주 이력은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신탁방식 정비사업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간 비용을 고민해왔던 지역에서도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최근 신탁사들의 수주 경쟁으로 인해 수수료율이 떨어진 영향이다. 과거 분양수익의 최대 4% 수준에 달했던 수수료율이 최근 1~2%대에 형성돼 있다.
물론 반대의 견해도 자리한다. 수수료를 깎는 출혈 경쟁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1·10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을 예고하면서 빠른 사업 추진을 장점으로 내세웠던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매력도도 다소 떨어진 상황이다.
신탁업계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겠다는 입장이다. 각 사가 갖춘 경쟁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신탁사의 참여가 필요한 사업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앞다퉈 전략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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