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27일 13: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반도체업계가 '물리적 복제 방지 기능(PUF)' 기술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AI 서비스 및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제로트러스트(Zero Trust)' 등 보안 요구가 높아지면서 복제가 어려운 반도체칩 확보가 당면 과제가 됐다. 반도체 설계 솔루션 기업인 미국 시놉시스가 PUF 기술업체를 인수하면서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설계 솔루션 1위 기업인 미국의 시놉시스(Synopsis)는 최근 네덜란드 소재 반도체 PUF 기술업체 ‘인트린직ID(InsrinsicID)’를 인수했다. 인수 대금 등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시놉시스는 인수와 함께 InsrinsicID 본사가 위치한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PUF 기술 우수 센터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인트린직ID R&D 부문의 주요 인력 대부분이 시놉시스에 흡수될 전망이다. PUF 기술 분야에 대한 글로벌 기술 선점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놉시스는 나스닥에 상장된 반도체 디자인 설계 솔루션(EDA) 제공 기업이다. 글로벌 EDA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인텔 등 글로벌 굴지의 반도체 제조사들을 파트너로 두고 있다. 이날 기준 시가총액은 891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한다.

반도체·보안 업계는 이번 인수를 두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PUF 기술 선점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내다봤다. 시놉시스라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피인수기업인 인트린직ID가 글로벌 시장에서 몇 안 되는 PUF 기술 보유 업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종합 반도체 회사를 제외하고 현재 상용화 단계에까지 도달한 PUF 기술 보유기업은 네덜란드의 인트린직ID를 비롯해 대만의 이메모리(eMemory)와 국내 ICTK까지 3곳 정도로 추려진다. ICTK의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작성한 투자설명서 내 ‘인수인의 의견’ 부분에도 같은 내용이 기재돼 있다.

제출된 평가의견서에 따르면 3곳 중에서도 특히 ICTK의 PUF 기술이 구조상 더 우위에 있다고 설명돼 있다.

PUF 기술은 반도체 칩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효한 공정 편차를 이용해 유일성·무작위성을 가지는 고유 식별자(Unique ID)를 생성하는 암호화요소 기술이다. '반도체 지문'이라고도 불린다. 사람이 지문이나 홍채 등 생체 정보로 본인 인증을 하듯 디바이스도 하드웨어(반도체) 자체의 특성에 기반한 고유값을 인증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ICTK의 PUF칩을 글로벌 경쟁사들 제품보다 우위에 두는 근거는 ‘수동 소자’ 기반 기술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수동 소자'인 VIA(비아)홀의 크기를 변경해 유효한 공정편차가 발생하도록 설계했다.


경쟁사(인트린직ID, 이메모리)의 기술은 '능동 소자' 기반의 기술이다. ICTK 역시 초반엔 이 기술을 기반으로 칩을 설계했다. 다만 이 방식은 생성된 반도체의 ID가 온도, 습도 등의 영향을 받아 변경되기 쉽다는 결점이 있다. 보안키 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태생적인 성질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결점 보완을 위해 오류 정정 코드(ECC, Error Correction Code)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반도체 설계 면적이 필요해 제조원가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ICTK가 보유한 수동 소자 기반 기술은 환경 변화에도 보안키 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 자체가 필요없는 구조다. 인트린직ID나 이메모리의 보안키 값에 비해 항상성 측면에서 더 안정적이다. 물리적 공격 대비 간건성과 보안키 길이 신축성 측면에서도 훨씬 우위에 있다. 반도체 산업 최대 연합체인 글로벌반도체연합(GSA)가 ICTK를 보안분과 리더로 내세운 이유다.

최근 ISO 국제기술표준 등재 및 글로벌 PUF업체 인수건과 맞물려 코스닥 기술 특례 상장을 앞두고 있는 ICTK도 다시 조명받는 양상이다. ICTK는 수동소자 기반의 VIA PUF칩을 양산화시킨 유일한 기업으로 꼽힌다. 이달 초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 예비심사 승인을 받아냈다. 내달 중 수요예측 및 공모 절차를 거쳐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