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뉴 웨이브]필름 콘서트 약진…영화·클래식 음악의 '공생'②영화 상영과 동시에 연주, 2030 청중 유입 통로…영화사 'OSMU' 활용 추세
고진영 기자공개 2024-04-08 09:29:55
[편집자주]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철학책 읽기와 비슷하죠.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고, 음악은 전부를 위한 게 아니거든요."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가 했던 씁쓸한 말이다. 청중이 있어야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면서도 대중성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런데 만년 겨울이던 국내 클래식 음악 시장에 온기가 들고 있다. 크로스오버 장르의 약진, K-클래식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쟁쟁한 스타 연주자들의 등장이 발판으로 작용했다. 대중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현재를 더벨이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4월 05일 07: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클래식 음악과 영화는 원래부터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무성영화만 존재했을 때 음악은 언어를 대체하는 도구였으며, 무성영화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도 플롯과 내러티브에 숨겨진 영향력을 유지해왔다.예를 들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테마곡으로 더 잘 알려졌다. 스탠리 큐브릭 역시 그의 호러극에 클래식 음악을 꾸준히 사용했는데, 영화 <샤이닝>에서 아니코닉한 '피의 복도' 장면은 벨라 바르톡의 <현악기와 타악기 및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을 써서 공포감을 고조시켰다.
◇2010년대 시작된 필름콘서트…국내는 '걸음마' 단계
최근 심상치 않은 클래식 음악의 부상도 할리우드에서 그 징후를 찾아볼 수 있다. 1920년쯤 시작된 할리우드 황금기 시절을 돌아보면 영화판 '모굴(mogul, 거물)'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출연시켰다. 조안 크로포드의 <유머레스크(Humoresque)>, 잉그리드 버그만의 <인터메조(Intermezzo)>,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토스카니니(Young Toscanini)>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요즘 영화판에선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 지난해 브래들리 쿠퍼가 주연으로 등장한 <마에스트로 번스타인(Maestro)>, 2022년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타르(Tár)>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만큼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영화와 클래식 음악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공생적이다. 클래식 음악이 영화산업의 발전과 역사에 기여했듯, 최근 몇 년간 클래식 음악의 부활에도 영화음악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로열 필하모닉이 지난해 일반 대중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84%가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볼 의향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8년 전에는 79%였는데 5년간 적잖이 증가한 수치다. 또 오케스트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설문 대상자의 24%가 영화음악 공연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이미 클래식 시장에선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영화에 삽입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자리잡기 시작했었다. 대부분 영화 상영과 동시에 OST를 실제 라이브 연주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국내에선 '필름 콘서트'로 부르고 있다.
필름 콘서트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 중 하나는 런던 최고의 공연장인 로열 앨버트 홀이다. 2009년부터 영화사들과 제휴를 맺고 '필름 인 콘서트 시리즈(Films in Concert Series)'라는 이름으로 로열 필 하모닉,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이 영화음악을 연주해왔다. 올해도 영화 <탑건: 매버릭>과 <아바타> 등의 필름 콘서트가 열린다.
특히 2022년을 기점으로 코로나19의 타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공연 시장에서 클래식 음악이 눈에 띄는 회복력을 보인 데는 영화음악의 영향이 컸다. 외국과 비교하면 필름 콘서트 산업이 상대적으로 걸음마 단계인 국내에서도 영화음악의 득세는 두드러진다.
◇클래식계 블루오션 '영화·게임'
현재 국내 클래식 공연의 티켓 매출 상위권은 필름콘서트를 비롯한 크로스오버 공연이 싹쓸이하고 있다. 지난해 클래식 음악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인 공연도 월트디즈니 100주년 기념 콘서트인 <더 사운드 오브 매직>이다.
청중들의 연령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사운드 오브 매직>의 연령별 예매율을 보면 10대부터 30대 비율이 74%에 달했다. 또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필름콘서트의 경우 10대가 24%, 20대가 39% 비중을 보였다. 보통 클래식 공연은 40대 관객이 가장 많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젊은 청중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셈이다.
공연 구조를 보면 해외에서는 주로 영화사와 메이저 오케스트라가 연계해 필름 콘서트를 제작하지만 국내는 영화사와 공연장, 공연기획사가 손잡고 공연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디즈니 인 콘서트>는 디즈니와 공연기획사 크레디아, 공연장 세종문화회관이 공연을 기획하고 주관했다.
또 클래식 공연기획사가 필름 콘서트 시장을 주도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IP(지적재산권)를 가진 영화사들이 OSMU(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 차원에서 필름 콘서트 활용을 늘리고 있다. 두 업계의 공생이다.
영화뿐 아니라 게임도 클래식 음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티켓 매출이 가장 많았던 클래식 공연 10개 중 하나로 게임 <원신> 콘서트가 있다. 이밖에 넥슨은 2022년 대표 게임들의 배경음악을 주제로 <넥슨 클래식 콘서트>를 개최했고 스마일게이트 역시 <사운드 오브 아크>를 이달부터 6월까지 전국에서 열기로 했다. 이용자와의 접점을 늘려 게임 충성도를 높이려는 취지다.
다만 이런 트렌드가 정말 클래식 수요의 저변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두고는 아직 걱정하는 시선이 있다. 필름 콘서트 청중이 정통 클래식 관객층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니, 특정 콘텐츠에 대한 일회적 관심으로 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반짝 관심에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적 시선이 있지만 영화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아직 초기 시장인 만큼 해외 사례 등을 공연기획에 참고해서 클래식 관객층으로 흡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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