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4월 16일 15: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종합상사 SK네트웍스는 2020년에 '사업형 투자회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에 투자법인을 설립해 해외 유망 스타트업과 펀드에 출자하고 현지 네트워크 구축에 나선 시기다. 아직 투자한 건들은 재무적으로 도움이 될 정도로 무르익지 않았다. SK네트웍스는 당분간 투자 회수보다 해외 기술 기업과의 사업협력과 네트워크 구축에 더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투자법인 하이코 캐피탈, 지난해 첫 자본감소

SK네트웍스는 2018년에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컬리(당시 마켓컬리)에 투자하며 초기단계 기업에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9년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 사장이 합류한 이후 투자 행보는 더 빨라졌다. 2020년 7월 최 사장 주도로 미국 실리콘밸리 투자법인 '텐엑스(TenX) 캐피탈'이 설립됐는데, 이는 SK네트웍스가 해외 유망 기술에 대한 투자와 현지 네트워크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탄이었다.


SK네트웍스는 텐엑스 캐피탈 설립 첫해에 14억원을 출자했다. 2021년에는 367억원, 2022년에 742억원으로 해마다 투입하는 자금을 늘렸다. 작년에는 144억원을 출자해 텐엑스 캐피탈은 누적 1268억원을 확보했다.

그 사이 법인명은 지금의 하이코 캐피탈로 바뀌었다. 텐엑스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이 있어 상표권 이슈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었던 탓이다. 2022년 4월에는 기존 법인장이었던 유봉운 SK네트웍스 재무실장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기획재무본부장으로 이동하면서 김사무엘 대표가 법인장을 맡았다.

하이코 캐피탈이 설립 이후 작년 말까지 출자-투자를 반복하며 총 18건을 투자했다. 이 중 지분 취득이 6건, 펀드 출자가 12건이다. 누적 투자금액은 1억4560만 달러(약 2000억원)다. 지분 취득 기업에는 스탠다드코그니션, 사반토, 휴메인 등 해외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이 있다. 출자 펀드들은 AI 외에도 데이터센터, 헬스케어, 바이오텍, 핀테크, 블록체인, 농업 등 미래 유망 기술을 망라한다.

하이코 캐피탈 자본을 1200억원까지 확충한 2022년에 처음 이익(당기순이익 23억원)을 거뒀다. 당시 증권가가 추산한 SK네트웍스 투자에 대한 내부수익률(IRR)은 15% 이상이었다. 초기단계 기업 투자가 주를 이루면서 투자 성과가 양호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작년에는 3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익에 기타손익을 더한 총포괄손익은 -148억원이다. 일부 투자 건들에서 손실이 발생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에 하이코 캐피탈은 작년에 출범 이후 처음 자본총계가 역성장했다. 일례로 하이코 캐피탈이 2021년 1월 300억원을 투자한 스탠다드코그니션은 작년 말에 기업가치가 140억원으로 떨어졌다.


◇당분간 투자 회수보다 네트워크 확장·사업 협력에 초점

하이코 캐피탈은 아직 투자기업·펀드에 대한 엑시트 성과는 없는 상황. 투자업계는 SK네트웍스가 사업형 투자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면 투자 성과가 재투자와 본사 성장, 주주환원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직 SK네트웍스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있다. 투자 회수로 당장 이익을 거두기보다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그룹사 투자 연계, 신규 투자 기회 발굴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SK네트웍스는 하이코 캐피탈 설립 이후 투자자와 창업자, 액셀러레이터, 기술·경제·법률 전문가 등 332명(2023년 말 기준)으로 구성된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를 확보했다. 회사는 이를 하이코시스템으로 부른다. 최 사장이 하이코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작년 6월 최 사장이 챗GPT 개발사로 잘 알려진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단독으로 만날 수 있었던 배경에도 하이코 캐피탈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올트먼 CEO는 하이코 캐피탈과 AI 디바이스 제조 스타트업 휴메인에 공동으로 투자한 이력이 있다.

SK텔레콤이 지난 1월 휴메인의 웨어러블 기기 'AI핀'을 국내 들여오기로 한 것도 하이코 캐피탈의 투자가 밑바탕이 됐다. 이는 SK네트웍스에도 호재다. SK텔레콤의 ICT 디바이스 유통을 SK네트웍스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SK네트웍스는 현재 매출의 절반가량을 이 사업으로 거두고 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아직 엑시트는 없지만 휴메인 사례처럼 투자 기업이 본사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