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통신소부장 기업들]케이엠더블유, 집 팔아 지킨 기업 '매출 1000억' 성장①김덕용 대표, 1991년 사업 시작…경제 위기 속 기술력으로 고난 극복
최현서 기자공개 2024-06-13 08:25:01
[편집자주]
통신사와 소부장기업은 실과 바늘 같은 존재다. 매년 조단위 CAPEX 투자를 집행하는 통신 업계에서 소재, 부품, 장비를 제공하는 협력사들의 역할도 막중하다. 상용화 5년이 지난 5G는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통신사들은 다가올 6G 시대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부장 기업들이 얻을 낙수효과도 분명 존재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더해 통신사들이 IT 분야로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서면서 소부장기업들도 발맞춰 신사업을 발굴하고 있다. 주요 통신 소부장 기업들의 사업 현황과 재도약을 위해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신사업 면면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07일 16: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케이엠더블유(KMW)는 2019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우통신, 삼성휴렛팩커드(HP)에서 경력을 쌓은 김덕용 대표가 고졸 사원 한 명과 세운 작은 통신장비 회사였다. 1991년 1월 39.7㎡(12평)의 작은 작업실에서 사업을 시작한 김 대표는 창업 초기 한동안 이익이 없어 집까지 팔아가며 회사를 운영했다.반전을 맞이한 건 1993년경이다. 통신장비 국산화에 성공하며 도약에 성공했고 이제는 국내 대표 통신 장비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다만 최근 들어 매출이 꺾이는 등 위기가 다시 확산되는 모양새다. 과거 보여줬던 모습처럼 이번에도 기술 개발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가능할 지 주목된다.
◇험난했던 사업 초기, 집 판 돈으로 버틴 시기
KMW의 첫 이름은 '코리아 마이크로웨이브'였다. 직역하면 한국 극초단파다. 극초단파는 전자레인지부터 지상파 UHD TV 방송, 이동통신 주파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이는 300~3000메가헤르츠(㎒) 주파수를 뜻한다. KMW는 통신 기지국에 부착되는 관련 장비를 만드는 업체로 출발했다.
창업자인 김 대표는 1983년 서강대학교 전자과를 졸업한 뒤 대우통신에 5년간 근무하며 무선통신 기술을 배웠다. 이후 삼성HP로 이직한 김 대표는 2년간 영업직에서 근무하며 사업 수주 방법을 배웠다.
대우통신 재직 시절 국산 통신 장비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후문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극초단파 송·수신 장비는 해외에서 수입되고 있었다. 또 1990년대 초부터 무선이동통신이 꿈의 시장으로 조금씩 언급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게 KMW였다.
김 대표는 당시 살던 집을 팔고 마련한 5000만원을 자본금으로 삼았다. 창립 멤버는 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사원 한 명이었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위치한 허름한 12평짜리 작업실을 갖추고 사업을 시작했다.
초반은 쉽지 않았다. 사업 첫 해 매출 3000만원, 이듬해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구·개발(R&D)에 거의 모든 돈을 쏟았다. 수익이 없으니 가세는 기울고 있었다. 89.3㎡(27평) 넓이의 번듯한 아파트에 살던 김 대표 가족은 연탄불을 써야 하는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 갔다. 나중에는 결혼 패물까지 팔고 단칸방으로 옮겼다. 4만원이 없어 자식들을 유치원에도 못 보냈다고 한다.
고난 끝에 서광이 비춘 건 1993년 6월이다. 세계 최초로 기지국용 '무선주파수(RF) 5:4 스위치'를 개발에 성공했다. 동생이 결혼 준비 자금 800만원까지 빌려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김 대표와 KMW는 꾸준한 R&D 투자로 결실을 마침내 봤다.
RF 5:4 스위치는 기지국 장비 중 고출력 파워앰프가 고장났을 때 RF 신호를 예비 앰프로 바꿔주는 장치다. 고출력 파워앰프는 무선 신호를 증폭해 송신 안테나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통해 신호가 외부로 더 멀리 전달되도록 한다. 예비 앰프는 고출력 파워앰프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 준비된 대체품이다. 파워앰프가 작동하지 않아도 RF 5:4 스위치가 RF 신호를 예비 앰프로 돌려 기지국이 정상 작동하도록 한다.
이 스위치가 개발되기 전에 RF 신호를 예비 앰프로 전환하려면 스위치 다섯개를 써야 했다. 여러 스위치를 쓰면 시스템의 복잡성이 올라가고 설치·유지보수비도 따라 올라간다. 여러 스위치를 써야 하기 때문에 전환 속도가 느린 것도 단점이었다. RF 5:4 스위치는 버튼 하나로 이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혁신적인 스위치 하나로 KMW는 삼성전자 협력업체로 등록됐다. 이를 시작으로 수직 성장했다. 1993년 7억5000만원이던 매출은 법인 전환 원년인 1994년 25억원, 1995년 80억원 등 급속히 늘었다. 장비가 해외로도 수출되면서 1996년 코리아 마이크로웨이브를 줄인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며 도약을 구상했다. 이 시기 직원수 400명을 넘길 정도로 기업 덩치가 커졌다.
◇연이은 고비, 기술 개발로 정면 돌파 승부수
승승장구 하는 듯했으나 창업 초 겪은 위기만큼이나 큰 격랑이 곧 불어닥쳤다. 1997년 말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휩쓸리면서다. 1998년 매출 321억원, 영업이익 6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1.5%, 54.7% 줄었다. KMW의 매출 80% 가량이 삼성전자로부터 왔는데 이 시기 어음 할인이 되지 않아 현금흐름이 막혀버렸다.
특히 1997년까지 KMW 수익원의 96%는 국내에서 발생했는데 외환 위기로 국내 시장이 침체되면서 새 길을 찾아야 했다. 해외 통신장비사 전환으로 위기 극복 방안을 찾았다. 그리고 그 수단은 먹혔다. 멈추지 않는 기술 개발 덕분이었다.
1997년 전체 매출에서 4%에 불과했던 해외 매출 비중은 1999년 18%로 늘었다. 2000년에는 33%까지 뛰었다. 특히 2000년 일본의 주요 통신사 NTT도코모에 옥외수신증폭기(OARA)를 납품하기 시작하며 연을 맺었는데, OARA가 KMW가 어려웠던 시절을 거쳐 완성된 대표적인 기술(1999년)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KMW의 해외 매출 비중은 89.7%에 달한다.
또다른 풍파였던 2008년 발생했던 글로벌 금융위기도 기술 개발로 돌파했다. 김 대표는 그의 사무실 옆에 연구소를 세웠다. 연구소 이름은 '크레이지'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기술 개발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렇게 2010년 나온 것이 4세대 이동통신(LTE)에 꼭 필요한 이동통신 소형기지국(RRH)이었다. RRH를 바탕으로 KMW는 다시 한 번 위기를 탈출했다.
이런 가운데 다시 고난을 맞이한 모양새다. 5세대 이동통신(5G)가 보급된 해인 2019년 KMW는 역대 최대 매출인 6829억원을 기록했지만, 5G 시장이 안정화된 최근 3년간 실적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1년 2052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001억원까지 떨어졌다. 영업적자 폭도 같은 기간 279억원에서 629억원까지 커졌다. 핀란드의 대표 통신기기 제조사 노키아가 사실상 통신장비 제조업체로 변한 2021년 KMW의 고객 리스트에서 빠지며 내리막길을 심화시켰다. 지난해 KMW의 주요 고객은 삼성전자와 라쿠텐 등으로 먹거리가 아시아 시장으로 좁혀졌다.
KMW는 과거에 그랬듯 R&D에 집중해 새 시장을 찾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KMW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웠을 때마다 항상 기술 개발에 더 매진했다"며 "기술력은 KMW의 원동력이고 수출 다변화에 기여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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