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6월 17일 07: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세대갈등의 역사는 유구하다. 오죽하면 피라미드에 적힌 문자를 해독했더니 요즘 것들에 대한 욕이 나왔다고 했을까. 인의예지신이 지배한 우리나라에선 한두살 차이로도 서열이 갈린다. 식상한 문제인데 끊이지 않는 건 시니어와 주니어 각각의 사상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서가 아닐까. 시니어가 될수록 내가 옳고, 주니어일수록 저게 맞아? 싶으니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MZ 오너와 OB 실무진의 관계는 참 독특하다. 나이는 MZ 오너가 한참 아래지만 기업에서의 실질적 위치는 한수 위다. 반대로 OB 실무진은 지배력은 낮을 수 있지만 경험은 압도적이다. 이런 힘의 균형을 잘 써먹으면 기회요 틀어지면 위기다.
특히 조심해야 할 때가 대관식 전후다. 내외부를 막론하고 자격을 증명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찾아오는 시기다. 조급한 마음에 격한 변화를 만들다 1인 후계자에서 유야무야 자손 중 1인이 되어버린 3·4세도 있다. 매출액을 까먹든, 색깔을 희석하든 과오를 빚은 탓이다. 반대로 괜찮은 아이템을 들고 강단이 없어 별 성과를 못 내는 이도 있다.
OB의 역할은 이때 중요하다. 오너이자 MZ인 인물의 강점은 생각이 젊고 그 아이디어를 실행할 능력까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첫 번째 역할은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 두 번째는 MZ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나머지가 있다면 지나치지도 덜하지도 않게 참견하는 것. 말이야 쉽지만 실례가 있을까. 지난달 봤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다.
"HD현대마린은 정기선 부사장이 선박 AS 사업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설립한 회사다. 책임지고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겼다." 정 HD현대그룹 부회장의 스승으로 불리는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안팎의 반대에도 정 부회장의 선택을 믿었다. 정 부회장이 갓 30대 중반을 지날 때다.
다만 쉬운 길을 터주지 않았다. 쏟아진 승계 질문에 권 회장은 확답 대신 본인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둘러 말했다. 그 능력을 증명할 곳이 HD현대마린이었다. 신생사이면서도 그룹의 절벽을 책임질 완충제로 평가받았다. 결과는 연평균 35%의 성장세와 성공적인 기업공개, 기대치보다 높아진 기업가치다.
다음 세대가 확실히 자리를 잡은 그룹들은 젊은 오너들의 멘토로 불리는 이가 분명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는 정순원 전 삼천리 대표 등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게는 김희철 한화임팩트 대표 등이 꼽힌다. 차세대 총수의 연착륙과 계열사 잭팟 중 하나라도 노리는 기업이라면 마음에 새길 법한 역사가 아닐까. 같은 방정식을 MZ와 멘토로 푸느냐, 요즘것과 꼰대로 푸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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