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9월 11일 07: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게 다 거래소 때문이다." 신약개발 바이오텍의 조달 혹한기 상황을 논할 때 쉽게 거론되는 배경이 바로 상장 문제다. 한국거래소가 신약개발 바이오텍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상장 문턱을 높인 게 지금의 조달 경색을 만들었다는 얘기다.실제로 올해만 놓고 보면 신약개발 바이오텍이 상장 문턱을 넘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삼수만에 상장에 성공한 디앤디파마텍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대신 소부장 기업이나 적게나마 돈을 벌고 있는 바이오텍 정도 상장에 성공했다.
상장하기 어려워지니 자금 공급책 역할을 하는 벤처캐피탈 등 금융투자업계의 투자심리도 얼어붙었다. 바이오텍의 경우 엑시트 전략이 상장밖에 없는 상황에서 거래소 전략에 따라 투자업계가 움직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상장 문턱 좀 낮춰주세요"라는 읍소는 굶어죽기 일보직전 상황에서 절규와도 같다.
하지만 정말 상장만이 문제일까. 거래소도 할말이 있다. '신약개발'은 성공도 실패도 장담키 어렵기 때문에 상장을 하나 안하나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리스크를 VC 등 기관투자가가 짊어지느냐, 공모시장의 소액주주들 '개미'들이 짊어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의 코스닥 시장은 기관투자가 중심인 미국 나스닥과는 다르게 절대적으로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자기 책임 원칙 하에 투자하는 전문가들과는 달리 개인들은 투자자 보호 정책이 필요한 약자로 분류된다.
시장의 특성상 거래소가 소액주주들 중심으로 고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라젠 등 과거 사태에서도 봤듯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에도 결국엔 투자자 보호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오텍들이 떠밀려 울며 겨자먹기로 상장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불확실한 엑시트 상황에 기관투자가들은 4~5년 내 상장을 약속하고 펀딩에 참여한다. 무르익지 않은 기술과 조직에도 주주들과의 약속을 어떡해서든 지켜야 하는 바이오텍의 고심이 깊다.
거래소 입장에선 이 같은 사례를 걸러낼 필요가 있다. 공모 시장에 나설만큼의 준비가 돼 있는지, 지속가능 기업으로의 입지가 마련됐는지 등을 살피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기술특례상장은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적자 상황에서도 상장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낮춰 주는 제도다. 사업성이 충분한 기술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어떻게 사업화를 할 것인지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그게 기술이전 레코드, 임상 데이터, 시장 트렌드 등이다.
민간과 기관, 그 누구도 짊어지려고 하지 않는 신약개발 리스크는 누가 짊어지는게 맞을까. 정부의 역할론이 거론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그렇다면 바이오 혹한기 책임은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엑시트를 고민하는 VC?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심사숙고하는 거래소? 바이오 산업 성장을 논하면서도 R&D 예산을 줄인 정부? 각자 자기계산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이 판에 결국은 바이오텍의 생존, 더 나아가 한국 바이오 산업이 10년 더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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