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7월 30일 07: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만서도 한국사회서 대를 잇는다는 건 단순히 생존이나 부의 보존 의미만은 아니다. 전통과 정신의 계승이라는 명분으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선대시대를 예우하는 정통성이 된다. 재계서 '소유와 분리'가 화두가 된 상황에서 승계가 중요이슈로 다뤄지는 것도 오랜 문화를 감안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그런 관점에서 일성아이에스로 사명을 바꾼 일성신약이 최근 '예비 후계자'를 공개채용하고 있다는 건 특이한 현상이다. 70세를 바라보는 최대주주 윤석근 회장의 의지 하에 진행된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갑작스레 재계의 트렌드에 눈을 뜬 노(老) 회장님의 선견지명 때문이라고 보기엔 부자연스럽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너 3세인 장남과 차남이 모두 경영 핵심자리를 꿰차고 승계수업을 받았다.
오너 일가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는 드러난 게 없으니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지만 윤 회장의 두 아들은 경영을 할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전해진다. 경영을 할 상황이 못되거나 경영의사가 없거나.
불가피하게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내세우며 전문경영인 반열에 올릴만한 30~40대 청년들을 각 부문 주요보직으로 채용하는 강수를 뒀다. 대를 잇는 가업이라는 명분, 정신을 잇는다는 정통성 모두 내려놨다는데 주목된다.
노 회장님의 승계 고민은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현상으로 제약업계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승계를 한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보령의 경우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제약이 아닌 '우주'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경동제약은 금융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제약은 단지 캐시카우일 뿐 젊은 오너의 취향은 다른 곳을 향한다.
제약사 창업세대들이 약사나 약품 영업직들이 주를 이뤘던 것과 다르게 승계 후보자들은 경영이나 금융을 전공했고 대부분 외국서 수학했다. '제약'이라는 고루해 보이는 틀 안에 갇히고 싶지 않은 MZ 오너들의 생각은 그럴듯 하다.
'의약품' 그리고 '생명윤리'라는 관점으로 제약사를 이끌던 전임 오너들과 다르게 후계자들은 '경영'의 대상으로 제약사를 바라본다. 그러니 제약이 아닌 분야의 혁신 투자가 많아지기도 한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다툼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갈등이 드러난다. 창업세대와 같이 혁신신약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녀와 CDO나 AI 등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형제의 갈등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전통이 맞고 혁신은 틀리냐, 혁신은 맞고 전통이 틀리냐' 그 누구도 답을 내리긴 어려운 지점이다. 규제와 성장 정체 벽에 부딪힌 제약업의 현 상황을 보면 더욱 한쪽 편을 들기도 어렵다.
다만 혁신이라는 달콤한 명분으로 제약업이라는 본질이 퇴색되지 않도록, 바뀐 세상에 전통만을 들이대는 한계를 맞닥뜨리지 않도록 한번쯤 '균형'을 고민해봄직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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