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불구, 美 연기금은 아시아 주목" 임기영 IBK투자증권 사장
이 기사는 2008년 11월 12일 09: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흡사 뉴욕 맨해튼 어느 빌딩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올림픽 도로 위의 빽빽한 차량의 행렬과 옆으로 굽이 흐르는 한강의 조망이 63빌딩 앞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블라인드를 내리려는 고정희 전무(전략기획본부)에게 그대로 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더니 임기영 IBK투자증권 사장 역시 그렇게 하자고 했다. 확 트인 시야가 다소 딱딱하게 시작되는 인터뷰 초반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줄 것 만 같아서였다.
30여년을 외국계 투자은행(IB)에서 보내다가 국내 공기업(기업은행) 산하 증권회사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임 사장과의 첫 대면은 그렇게 시작했다. 인터뷰 중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그가 전한 ‘아시아를 보는 월가의 시각’이었다.
“(미국 금융위기에도 불구) 사모펀드는 지금도 액티브하다. (사모펀드는) 미국 연기금과 연결돼 있다. 미국 연기금은 아시아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연기금의 특성상) 돈은 계속 들어오는데, 미국에서 투자는 어렵다. 그래서 지금은 아시아를 본다. 인도와 중국을 대표축으로 한국, 대만, 일본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블랙스톤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제휴한 것도 하나의 사례다.”
“美 연기금이 주목한다”
사실 ‘신설증권사 CEO’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리버스 커플링’의 증거는 심심찮게 만나왔었다.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스탠다드차타드 그룹이 첫 증권사를 한국에 설립한 것이나 유독 어려운 시기에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 신설증권사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금융 위기 속에서 느꼈던 물밑의 다른 기류였다. 임 사장이 거기에 ‘낭보’ 하나를 추가해 준 셈이었다.
‘리버스 커플링’이란 국제경제연구소(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이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언급한 신조어이다. 미국경제가 성장하면 이에 기대어 이머징 마켓 경제도 성장하던 현상이 반대로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최근 미국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미국이 오히려 이머징 마켓에 의존해 경제회복을 꾀하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2명의 금융계 거장에게 배웠다”
임 사장은 우리나라 2명의 금융계 거장 밑에서 동시에 일을 배운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첫 번째 스승은 MBA(조지워싱턴대) 이후 첫 직장인 장기신용은행 근무 당시 만난 윤병철 전 우리금융회장이다. 윤 전 회장은 당시 장기신용은행의 상무였고 임 사장은 갓 입사한 사원이었다. 임 사장은 “그분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큰 스승”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이건삼 전 뱅커스트러스트(BTC·Bankers Trust Corporation) 서울지점 대표다. 윤 전 회장이 국내파라면 이 전 대표는 해외파의 대표주자다. 84년 제2대 서울지점장에 취임한 후 97년까지 조직을 이끌었다. 임 사장은 “지금은 은퇴해 맨해튼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기신용은행에서 자리를 옮기고 나서 1991년까지 BTC에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 전 대표는 대부분 도제식으로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그가 함께 일한 BTC 출신 금융인맥은 요즘 국내 금융계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KB국민은행장, 김성태 대우증권 사장 등이 임 사장의 동료들이다. 이 외에도 민유성 산업은행장, 이원기 KB자산운용 사장, 박장호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사장 등이 BTC 출신이다.
예탁자산 벌써 1.8조, 기업은행과 시너지 효과
금융이 ‘네트워크’라면 이만한 인맥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출범한 지 3개월 정도 지난 IBK투자증권의 성적은 여타 신설증권사와 비교할 때 월등하다는 평이다. 9월과 10월 월평균 1만개의 계좌가 신규 개설됐다. 예탁자산도 꾸준히 늘어 1조8000억원(리테일 1조4000억원, 법인 4000억원)을 돌파했다.
리테일 부문의 전략을 어떻게 세웠길래 성과가 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임 사장은 IB 출신이다.
옆에 있던 고 전무는 기업은행과의 조화가 주효했다고 거들었다. 중소기업이 밀집한 ‘공장(대구 성서공단, 인천 남동공단)’ 주변 기업은행 내에 지점을 개설했고 자산관리와 투자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제공하면서 약정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브랜치 인 브랜치'(Branch in Branch) 방식이라고 했다. 오픈한 지점 수만 현재 14개이고, 조만간 반월공단에도 지점을 개설할 방침이다.
임 사장은 “대형할인마트에도 10평 정도의 출장소를 올해 안에 두세 곳 개설할 예정”이라며 “대형마트에 입점한 증권사로는 IBK투자증권이 최초"라고 했다.
2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마감 예정된 3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해외 IB 출신 CEO가 성공적인 증권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정도로 마무리 하고 가기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금융위기와 미국쪽 분위기를 전해달라고 했다.
“금융은 자본력, 여건되면 자본확충 나설 것”
그는 자본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빅6 투자은행 가운데 리먼 브라더스만이 파산한 원인도 자본력에 있었다는 게 분석의 요지였다.
“씨티그룹은 10년 전에도 자본 확충에 대해 고민했었다. 글로벌 IB는 자본금, 즉 사이즈의 문제이다. 10년이 더 된 이야기다. 당시 씨티그룹의 시가총액은 200억달러였는데, 씨티 CEO들은 그때도 시가총액이 500억달러는 돼야 한다고 고민했었다. 이번 미국 금융위기를 봐도 자본력이 약하고 레버리지만 높은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금융시장이 커지고 변동성을 극복하려면 대규모 자본이 있어야 한다. 자기자본이 부족하면 위기를 감당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는 우리나라 역시 은행이든 증권사든 자본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정책도 자본확충과 관련해 숨통을 트여주는 쪽으로 해야 한다”며 “(IBK투자증권도) 시장 상황이 좋아져 여건만 되면 자본을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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