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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 수수료 경쟁과 죄수의 딜레마

문병선 기자공개 2009-07-17 12:41:56

이 기사는 2009년 07월 17일 12: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투자은행(IB) 업무의 수수료는 단순 중개(brokerage)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그만큼 업무가 고달프고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가끔은 계약상 정한 수수료보다 얹어 받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한 태양광 발전설비 업체도 미리 정한 수수료외에 1억5000만원을 추가로 주관사에 지불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계약서에 수수료가 정해져 있지만 딜이 끝난 후 평가결과에 따라 바뀔 수 있다"며 "우리도 고생을 함께 한 주관사와 상장 이익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CEO의 판단에 따라 수수료를 더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공모금액(315억원)의 5%인 15억7000만원에 보너스 1억5000만원을 더해 모두 17억2000여만원을 주관수수료로 지급했다.

두 회사의 관계가 좋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태양광 설비는 시설 투자에 다량의 자금이 소요돼 앞으로 유상증자를 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할 필요가 있다. IB로서는 오래갈 수 있는 고객을 잡은 셈이다. 다른 태양광 업체들에게 간접 광고도 된다. IPO에서 맺은 인연을 활용해 지속적인 RM(기업고객관리)을 구축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IPO나 유상증자 뿐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M&A)에서도 수수료를 더 지급한 사례는 종종 눈에 띈다. 얼마 전 끝난 미국 이베이의 G마켓 인수전. 1년 이상을 끌어온 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한국과 미국에 분산된 주주들로부터 모두 공개매수를 해야 하는 등 구조가 복잡했다. 그래서인지 법률자문사만 국내외 로펌 4개 이상이 매달렸고 인수 및 매각 자문사도 역시 4개 업체 이상이 연관됐다.

정통한 한 관계자는 “워낙 복잡한 거래를 성사시켜 회사측의 만족도가 매우 컸는데 그래서인지 수수료 지급 시기가 굉장히 빨랐고 보너스까지 지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딜이 종료된 후 회사를 불문하고 모든 관계자들이 모여 기분좋게 파티까지 열었다는 후문이다.

성공한 비즈니스에는 보상이 뒤따른다. 이런 사례가 자주 등장하면 할수록 국내 투자은행(IB) 업무의 수준이 한 계단씩 올라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주관사는 기업고객을 만족시키고 기업은 주관사의 희생과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 준다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만한 최고의 딜이다.

반면 실패한 비즈니스도 자주 목격되고 있다. 모 업체와 2년여 기간 함께 IPO를 준비했던 한 IB가 정작 막판 딜 성사를 앞두고 주관사에서 탈락한 것이나 공개 입찰에서 파격적인 덤핑 수수료가 제시돼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준 사례 등이다. 이런 사례는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실패한 비즈니스에는 반드시 필연적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고객과 IB의 궁합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고 IB의 능력과 서비스 수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의 비용절감 노력이 딜을 실패로 이끌 수도 있다. 평소 끈끈한 RM을 구축하지 못한 업체들이 덤핑을 치고서라도 딜을 따내려고 하는 시도도 중요한 실패 원인중 하나다.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성공한 비즈니스와 실패한 비즈니스는 항상 있다. 비즈니스의 성패를 경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경기가 회복기에 들어설 때 경쟁이 과열돼 실패 사례가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 경쟁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다 과열된 것인지, 막가파식 출혈 경쟁이 요인인지 여부에 따라 시장 전체의 경쟁 수준이 결정된다.

IPO수수료가 대략 1년전에는 '공모금액의 3% 또는 3억원중 많은 금액' 수준에서 결정됐다. 그런데 요즘은 공모금액의 1.5%로 크게 하락했다. 기우일 수 있지만 수수료 하락이 서비스 질의 저하를 불러 오진 않을까 우려된다.

불과 3개월여전 "(수수료 덤핑은)일부 중소형 업체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이라고 했던 모 증권사 ECM담당 직원은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딜을 못할 정도로 시장이 혼탁하고 가격 경쟁이 이슈가 돼 간다”고 말했다. 상황인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마치 두 죄수가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이 아닌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더욱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게 된다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처럼 국내 IB도 경쟁의 딜레마에서 서로를 죽이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훌쩍 회복한 ECM 시장이 모처럼 성장의 계기를 맞고 있을때 10년 후에 국내 IB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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