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0년 01월 15일 14: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2007년 7월. 정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용지를 공급한다는 공고를 발송한 후, 국내 건설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빠졌다.

쌍용건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외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행정도시 한복판에서 수주를 따내 국내건설업계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관련부서 직원들은 석달 간 밤잠을 설쳐가며 ‘턴키발주 설계도’를 만들었다. 설계비용으로만 약 20억원이 들어갔다.

그리고 10월. 쌍용건설은 세종시 내 가장 입지가 좋다는 P12블럭을 분양 받는 데 성공했다. 토지대금은 총 762억원, 대지면적은 8만 6010㎡(약 26000평)로 정부청사 예정지와 가장 인접한 지역이었다. 분양가는 3.3㎡당 약 292만원으로 다른 블럭(250만~290만원)보다 다소 높은 편이었지만, 세종시의 노른자를 차지한 이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기쁨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지난해 9월 LH공사로부터 세종시 토지매입 계약해지를 통보 받았기 때문이다. 2차 중도금을 미납했다는 이유였다. 계약체결 이후 대금을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계약파기가 당연한 일. 하지만 쌍용건설 입장에서는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현재 세종시 토입매입 계약이 해지된 건설사는 풍성주택과 쌍용건설 총 두 곳. 풍성건설은 계약금 납부 이후 1차 중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일찌감치 세종시에서 손을 뗐다. 반면 쌍용건설은 1차 중도금(171억 4000만원)을 정상적으로 납부했다. 2차중도금 납부를 미루기는 했지만 지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것은 아니었다.

당시 세종시 건설계획이 지지부진해 지면서 쌍용건설을 포함한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LH공사에 2차중도금 납부기한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원칙'을 강조한 LH측이 이를 묵살했고, 건설사들은 대금지급을 미루며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부 건설사는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실제로 해지 통보가 온 곳은 쌍용건설 한곳 뿐이었다.

이에 대해 LH공사 관계자는 "세종시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중도금 납부를 미루고 있는 모든 건설사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었다"면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내부방침에 따라 계약해지 대상 건설사를 가려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업계관계자들은 쌍용건설이 계약해지를 당한 진짜 이유는 세종시 내 분양 받은 토지위치와 관련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쌍용건설이 분양 받은 P12블록이 문제라는 것.

청사예정지 바로 옆에 위치하다 보니 상징성이 컸다. 정부입장에선 다른 곳은 몰라도 청사와 인접한 지역에서 공사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막고 싶었다. 인기가 좋은 땅인 만큼 분양권을 다른 건설사로 넘겨 대금을 지급받는 게 가능하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쌍용건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자신들만 세종시로부터 쫓겨난 신세가 됐다. 문제의 발단은 정부청사이전 불발이었는데, LH공사는 오히려 중도금미납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계약금을 반환해 주지 않았다.

행정도시를 앞세운 ‘사기분양’이라는 말이 시장에서 공공연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토지분양 방식이 아닌, 설계도를 먼저 요구한 정부의 잘못된 토지분양 절차에 대해서도 뒤늦은 지적이 나왔다.

억울한 쌍용건설이 호소할 곳은 ‘법’뿐이었다. LH공사를 상대로 계약금반환소송을 걸었다. 설계도관련 비용 20억원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계약금 76억 2000만원 만큼은 꼭 돌려받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현재로선 계약금반환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

A 건설사 관계자는 “만약 건설사가 아파트 주변에 도로가 들어선다고 광고하고 입주자를 유치했는데 실제로 도로건설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건설사 자신들이 져야 한다”면서도 “세종시 문제도 따지고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대상이 공기업이라는 점에서 책임은 건설사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