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4월 24일 07시5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동차, 철강, 조선, 에너지 등 굵직굵직한 제조업을 다루는 산업부에서 금융부로 이동한 지도 어느덧 9개월이 지났다.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등 재계를 쥐락펴락하는 그룹들을 3년 반가량 들여다본 뒤 성격이 다른 금융 쪽에 오니 놀랄 일이 많다.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돌이켜보니 많은 걸 느꼈다.'피곤하겠다.'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느낀 단상이다. 일단 부르는 곳이 많다. 재계 오너들이야 정부가 주체하는 행사가 있어도 출장 핑계로 참석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 이를 테면 부회장을 보내면 그만이지만 금융권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일단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 등 지주 회장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지 않아도 종종 만나게 된다. 은행장들 역시 마찬가지. 최근엔 차기 대선주자까지 부르는 통에 앞에서 모두들 표정 관리에 힘들었을 거라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다.
상생 요구가 높은 건 말할 것도 없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금융지주들은 누가 질세라 성금과 함께 금융지원 방안을 내놓는다. '상생'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중시돼야 하는 가치이지만 유독 금융권에선 상생의 가치가 업의 본질도 앞서는 모양새다.
간섭은 또 보통 할까. 하다못해 내부 임원 선임에도 말을 얹는다. 결국 경영은 내부 임직원이 하는 건데 밖에서 부회장을 선임해라 마라 눈치를 주는 게 쉽사리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인사권은 대표이사의 고유 권한이자 조직을 움직이는 원천이지 않나.
이뿐만이 아니다. 본업을 잘할수록, 본업에 충실할수록 욕을 먹는 곳은 거의 금융권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자 장사'라는 어휘 자체엔 이미 부정적 뉘앙스가 깔려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자 장사인 게 당연하다. 은행의 본질이기도 하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게 제조업이라면 은행업은 여유 자금을 받아 수요자에게 빌려주는 것, 즉 예금과 대출을 통해 자금을 중개하는 게 제 역할이다.
물론 돈을 다룬다는 점에서 은행을 보는 시선이 날카롭고 규제가 까다로운 건 어느 정도는 당연하다. 그렇다고 또 은행들이 눈에 안차느냐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다. 국내 은행권들은 까다로운 요건들을 충분히 지키고 있다. 실제 주요 금융지주들의 기업 관련 정보 공개는 놀라운 수준이다. 웬만한 경영지표는 물론 상무급 임원 선임도 공시를 통해 일일이 알리고 있다. 홈페이지나 IR 자료엔 기업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가 담겨있다.
이사회 역시 그 어느 곳보다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 모두 사내이사는 최소한에 그친다. 1명 혹은 많아도 3명인 사내이사와 최대 9~10명까지 이르는 사외이사들로 이사회가 구성돼 있다. 굳이 사업보고서를 살펴보지 않아도 홈페이지만으로 이사회나 이사진 관련 정보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최근 한 사외이사의 경력에 오기가 있어 홍보 담당자에게 얘기했더니 이사회 사무국과 연결해 단 5분도 되지 않아 수정이 이뤄졌다. 일반 대기업이었다면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들다는데 금융업 역시 예외는 아닌듯 싶다. 부르면 가고 눈치 주면 눈치 보는 와중에 본업은 나무랄 데 없으니 멀리서나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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