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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건설의 Big Bath

강종구 기자공개 2013-02-06 07:04:44

이 기사는 2013년 02월 06일 07: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돌이켜 보면 2012년 6월 두산건설의 신용등급 하향(A-에서 BBB+)은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사견을 말하자면 당시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하향 조치는 절대적으로는 옳지만 상대적으로는 부당한 처사였다.

신용등급에 거품이 끼어 있기는 다른 건설사들도 마찬가지여서 A급이면서도 실제로 A급의 대우를 받는 곳이 드물었다. 재무구조나 현금흐름에서 두산건설만 못한 곳을 찾으라면 못 찾을 것도 없었다. BBB+가 더 어울리는 등급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두산건설은 억울했을 것이다.

신용등급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절대 평가이지만 필연적으로 상대평가이니 같은 등급이면 키가 비슷해야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은(?) BBB+급에서 두산건설은 어색했다. 홀로 거품을 반납당했다고 해야 할까. 오래된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에서 '한 놈만 패는' 무대포(유오성 분)가 생각났다.

2011년으로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두산건설의 큰 이벤트를 만나게 된다. 두산중공업이 총대를 멘 3000억 원의 유상증자와 그 돈을 밑천으로 그해 4분기 감행한 1차 Big Bath(누적된 손실을 최대한으로 털어버림으로써 재무제표를 클린화하는 일)가 그것이다.

1차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유상증자한 돈을 전부 쏟아 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의지가 결연하지 못했던 것인지, 회사측도 부실을 모두 드러내는데 주저했다.

기왕에 할 것이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불확실성과 의심을 키우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곤 한다. 두산건설이 그런 경우였다. 다른 건설사보다 부실자산 상각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확신을 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두산건설에 대한 본격적인 디스카운트는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최대주주인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 지분을 기초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고, 이를 명분으로 연결회계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까지 생기자 꼬리자르기에 대한 우려도 전보다 더 커졌다.

2010년 두산메카텍 흡수합병, 2011년 3000억 원 유상증자와 부실자산 상각은 그때까지 다른 건설사가 보여준 구조조정 노력보다 못한 편이 아니었다. 사정이 다르기는 해도 3000억 원 유상증자로 신용등급이 오른 건설사도 있었다. 두산중공업처럼 사업부문을 넘겨주고 유상증자까지 해 준 곳은 별로 없었다.

신용등급 강등 이후 두산건설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신용평가사들이 그럴 걸 알고 등급을 내린 것인지, 등급이 내려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용등급 강등으로 회사의 자금조달 루트가 사실상 차단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공식적으로' A급 미만의 회사채에 대한 투자를 금하고 있다. BBB급으로의 강등은 기관투자가 시장에서 퇴출을 의미했다.

A급이었을 때는 비록 A급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금리를 높여 주면 회사채를 사 주는 기관투자가가 있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난 후에는 훨씬 더 높은 이자를 쳐준다고 해도 아무도 사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장기채 발행이 되지 않다 보니 얼마 못가 대부분 차입금의 만기가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최악의 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이다.

두산그룹이 이번엔 제대로 칼을 뺐다. 사업부문 양도와 유상증자를 포함해 '1조원 짜리' Big Bath 계획을 내놓았다. 2012년 결산에는 무려 7500억 원에 달하는 대손충당금을 설정했다. 그 중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산 제니스 사업장에 대한 상각이 3000억~4000억 원 정도는 될 것이라고 한다.

유동성위기는 완전히 해소되고 매출채권과 미수금 대여금 등 PF와 관련된 금융자산의 상각률은 50%에 육박한다. 발전설비를 만드는 두산중공업과 아주 밀접한 플랜트사업 비중은 크게 높아질 것이 분명해졌다. '현금흐름'을 창출할 분명한 먹거리가 생긴 것이다. 이 정도면 가히 대청소 수준이 아니라 조금 과장하면 회사를 다시 만든 수준이다.

그런데 신용평가사와 투자자들의 반응은 놀랍도록 차갑다. 일산 제니스 사업장의 실 분양률과 입주율을 확인해야 비로소 인정해 주겠다고 한다. 물론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하고, 일산 제니스는 가장 핵심적인 사업장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추가로 부실이 나온다고 한들 대세가 달라지나…

국내 중대형 건설사 중에서 자산의 부실화가 심한 곳이 꽤 있다. 현금흐름은 대부분 좋지 않다. 두산건설보다 등급이 높다. 시공능력순위 최상위에 있는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사업이 피난처에서 문제아로 바뀌었다. 원가율은 높아져 역마진이 발생하기도 하고 선수금이 급격히 줄었다. 그로 인해 대규모 상각을 준비하는 곳들도 있다. 일산 제니스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멀고, 정보도 없다. 그런데 왜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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