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오가는 신평사, 이번엔 등급 하향 경쟁 타사 결론 보며 더욱 보수적 평정…논리적 적합성이 문제
황철 기자공개 2014-03-17 15:13:15
이 기사는 2014년 03월 15일 00시4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등급 쇼핑, 뒷북 평정, 묻어가기 평가' 국내 신용평가사에 오랜 기간 따라 붙던 불명예스러운 오명이다. 그러나 최근 신용평가사의 평정 태도는 이 같은 선입견을 불식하고도 남을 만큼 파격적으로 변했다. 서로 경쟁이라도 벌이듯 보수적 평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과거에 비해 평가 성향은 달라졌지만 신용평가사 간 '눈치보기'라는 공통 분모에는 변함이 없다. A신평사가 한 노치 등급을 하향하면 B평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노치를 강등하는 식이다. KT ENS 법정관리 사태에 대해서는 평가사별로 입장을 정리할 때마다 등급 하향 경고의 범위가 넓어져 갔다. 초우량 기업인 KT조차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오르는 수모를 겪었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런 평가사의 태도 변화와 등급 상향에서 하향으로 뒤바뀐 경쟁 구도에 대해서 역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크레딧의 속성상 보수적 평가가 기본인 것은 인정하지만 평정의 근거나 논리적 적합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 끝판왕은 '한신평'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줄기차게 제기된 신용등급 인플레이션 논란에도 꿈쩍 않던 평가사들의 태도가 뒤바뀌었다. 기업에 발생한 신용 이슈에 대처하는 방식에 뚜렷한 변화가 엿보인다.
신용등급 조정이나 아웃룩 변경, 워치리스트 등재 시점이 과해 보일 정도로 빨라졌다. 이슈 리포트, 크레딧 코멘트도 내용상의 부실 논란은 있지만 발표에 있어 이보다 적극적일 순 없다.
신용평가사의 보수적 평정의 절정판은 KT ENS 법정관리 신청에서 비롯됐다. 한국신용평가는 12일 법정관리 신청 발표 직후 곧바로 KT ENS의 신용등급을 A에서 C로 강등했다. 몇 시간 뒤 NICE신용평가는 한 걸음 더 나가 디폴트(Default; D등급) 판정을 내렸다.
KT ENS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지 않던 한국기업평가는 같은날 오후, KT그룹의 계열사 신용등급에 녹아 있는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건드리고 나섰다. KT 계열사 전체의 외부 지원가능성을 재검토해 추후 신용등급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신주단지처럼 여기던 '계열 지원 가능성' 반영의 실수를 인정한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경쟁사들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섰다. 끝판왕은 한국신용평가였다. 한국신용평가는 12일 밤 늦게 KT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하향 검토 감시 대상에 등재했다. KT렌탈, KT캐피탈, KT에스테이트, KT오토리스, KT텔레캅 등 등급 의뢰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했다. 주된 이유는 앞서 한국기업평가 제기한 '계열 지원 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발생했다는 것.
특히 한국신용평가는 모기업 KT의 신용등급에도 흠집을 냈다. KT ENS에 대한 지원의지 철회가 신뢰도 저하와 평판위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평정논리상 KT ENS 법정관리 사태가 KT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만한 영향력을 가질 정도는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뒤이어 NICE신용평가는 13일 KT스카이라이프. KT캐피탈, KT렌탈, KT오토리스, KT링커스 등의 신용등급에 하향 검토 기호(↓)를 붙였다.
KT ENS 법정관리 사태로 야기된 신용평가사의 보수화 경쟁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으로 불똥이 튀었다. 13일 NICE신용평가가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B로 한 노치 하향한 게 시작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에 대해서는 BBB+로 유지하고 하향 검토 대상에 등재했다.
KT ENS와 관련한 평정에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탓일까. 한국기업평가는 같은날 밤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두 노치나 낮춰 투자적격의 마지노선인 BBB-로 떨어뜨렸다. 부정적 검토대상에도 등재해 투기등급 강등의 가능성도 높였다.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 또한 BBB-로 떨어뜨리고 부정적 전망을 달았다.
이 정도의 등급 스플릿은 애교였다. 이번에도 한국신용평가가 종결자로 나섰다. 한국신용평가는 하루 지난 14일 밤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아예 투기등급(BB+)으로 강등했다.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 등 계열사들도 무더기로 폴른 엔젤(Fallen Angel)로 격하시켰다.
◇ 평가 근거, 논리적 적합성 담보해야
시장에서는 신용평가사의 돌연한 평정 태도 변화에 다소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평가의 근거나 논리적 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적인 예로 모기업인 무디스마저도 동의하지 못한 한국신용평가의 KT에 대한 와치 리스트 등재가 꼽힌다. 무디스는 13일 한국신용평가의 와치 리스트 등재가 이뤄진 다음날 KT ENS의 법정관리가 KT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의 신용등급 스플릿에 대해서도 정상적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상선의 신용 리스크야 모두가 공감하는 사항이지만 평가사별로 최대 두 노치나 차이가 나며 투자적격과 투기 등급을 오갈 정도로 이견이 발생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
특히 국내 신용평가사의 경우 등급 체계나 평가방법론, 등급 내 기업들의 분포상 평가사별로 차별점이 거의 없다. 3사에서 받은 기업 신용등급이 대부분 동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증권업계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동양 사태 이후 신용평가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최근 금융감독원이 특별검사에 나선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평가의 근거나 논리적 적합성은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청약증거금 2조 몰린 쎄크, 공모청약 흥행 '28일 상장'
- [영상/Red&Blue]겹경사 대한항공, 아쉬운 주가
- [i-point]모아라이프플러스, 충북대학교와 공동연구 협약 체결
- [i-point]폴라리스오피스, KT클라우드 ‘AI Foundry' 파트너로 참여
- [i-point]고영, 용인시와 지연역계 진로교육 업무협약
- [i-point]DS단석, 1분기 매출·영업이익 동반 성장
- [피스피스스튜디오 IPO]안정적 지배구조, 공모 부담요소 줄였다
- 한국은행, 관세 전쟁에 손발 묶였다…5월에 쏠리는 눈
- [보험사 CSM 점검]현대해상, 가정 변경 충격 속 뚜렷한 신계약 '질적 성과'
- [8대 카드사 지각변동]신한카드, 굳건한 비카드 강자…롯데·BC 성장세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