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벌3세]금수저 물고 올라탄 '급행열차'의 허와 실[프롤로그 ①]창업(할아버지)-2세(아버지)와 차별화, '특권의식' 논란도
문병선 기자공개 2015-01-13 08:43:00
이 기사는 2015년 01월 07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세계 최고의 경영자로 추앙받는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창조적인 두뇌로 탁월한 경영 성과를 냈던 것과 달리 성격은 매우 안좋았던 것으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과감한 추진력을 가진 열정적 사업가였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가 너무 부족한 불 같은 성격을 갖고 있어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예컨대 그는 사람들을 '천재' 아니면 '바보'로 분류했다. 팀원들이 만든 제품을 두고 '최고' 아니면 '쓰레기'로 나누기를 자주 했다. 해고도 서슴지 않았다. '세기의 아이콘'이라는 명성 뒤에 '성공한 사이코패스'라는 악명이 따라다닌 이유다.
국내에도 특이한 성격을 가진 CEO가 적지 않다. 하루 아침에 임원을 실직자로 만들거나 조폭을 대동해 폭행을 당한 아들의 복수를 하는 재계 총수, 그리고 해외에서 교포와 다툼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재벌 3세까지 다양하다. 이런 CEO에 대해 대중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지만 적지 않은 경영 성과를 냈던 이들도 상당하다. 좋은 성격과 기업 경영 능력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 대기업 임원은 "모시고 있는 오너에 대해 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리는 임직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너의 성격과 기업의 경영성과간 연관관계가 있는 지는 연구해 볼만한 주제다. 일반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여러 오너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마도 원만한 성격이 아닐수록 경영 성과는 더 낫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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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사회는 1명의 '재벌 3세'로 인해 시끄럽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뉴욕공항에서 한 승무원이 매뉴얼대로 땅콩 서비스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공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해 파장을 일으켰다. 위법적 회항에 기내 폭행 혐의까지 더해져 법정에 서는 처지에 놓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누적돼 왔던 재벌 3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된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젊은 경영인들이 갖고 있던 독선주의나 특권의식 등이 표출된 단적인 사건이라는 식이다. 사건의 파장은 정당하지 않은 재벌 3세로의 후계 승계 과정으로까지 확대돼 재벌 3세 리스크를 기업 리스크, 나아가 국가 리스크로 바라보는 시각까지 존재한다.
물론 재벌 3세를 향한 부정적 시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한창 유행했을 때 이를 패러디한 '오빤, 재벌스타일'이라는 웹툰이 인기를 끈적이 있다. 웹툰에 등장하는 재벌 2세는 아버지 돈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지만 아버지의 후광이 싫어 집을 나와 사업에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다.
그러나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 축제에 참석했다가 한국 친구에게서 골프를 치자는 전화를 받고 바로 다음날 귀국한 뒤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점심 무렵 친구와 골프를 즐기는 등 드라마에서나 종종 묘사되는 졸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스타 셰프의 식사 서빙을 받고 명품 의류 브랜드 가게에서 돈을 펑펑 쓴 뒤 그날 저녁 여자친구에게 작지만 유독 반짝거려보이는 반지를 선물하는 등의 반감을 사기 충분한 부정적 이미지도 덧붙여진다.
그만큼 재벌가 자제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과거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된 창업가 세대를 바라볼 때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땅콩회항' 사건은 저간에 흐르던 일부 재벌 3세에 대한 이런 부정적 시각이 '빅뱅'처럼 터트려진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스티브잡스의 사례나 국내 대그룹 일부 오너의 사례에서 보듯 성격적 결함이 있다고 해서 기업 경영 능력까지 없다고 보는 건 다소 섣부른 판단이다.
게다가 많은 재벌 3세들은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혹독한 경영수업과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밥상머리' 교육과 이어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가정교육은 재계 잘 알려진, 재벌가의 보수적 교육관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3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비슷한 연령의 재벌 2~4세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겸손하고 윗사람에게 깍듯할 뿐 아니라 친화력이 뛰어나 다른 그룹에 몸담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긍정적 평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이런 평가는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부하직원에게도 늘 겸손하며 임원들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해 '겸손의 화신'으로 알려진 삼성그룹 3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는 대학 시절 4년동안 조부에게서 받은 가방을 한결같이 가지고 다녔다. 재벌이라고 재벌인 체를 하지 않았고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87학번 동기들과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를 할 만큼 잘 어울렸다. 고등학교 시절엔 청바지 한 두 벌만 번갈아 입고 다니는 등 일부 재벌 3세들의 사치스런 외향과 전혀 다른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한진가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역시 2007년부터 기내 서비스 부문을 맡아 대한항공 기내 서비스 수준을 크게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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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대한 시각은 세대가 더 해 질수록 바뀌고 있다. '아! 대한민국, 재벌공화국(이동연 作)'이라는 책을 보면 재벌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재벌 2세를 이 책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 대중들은 재벌2세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나를 이 갑갑한 현실에서 끄집어 내 신데렐라로 만들어 줄 재벌들이 있다는 기대를 대중들은 더 이상 품지 않는다. '추적자'와 '유령' 두 드라마가 다루는 내용에 공감하고 같이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가 현실을 적나라하게 투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경제 시대에서 피할 수 없는 변화인지 모른다. '재벌, 한국을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박형준 作)'이라는 책을 보면 '포스트-1997' 시대는 '양극화 성장'으로 성격이 규정된다. 상위 10대 재벌그룹의 시장가치는 시장 평균 가치의 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커졌다. 1998년 19배였지만 2011년 48배에 달했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상위 1%를 바라보는 하위 99%의 시각에 색안경이 씌워진 지 오래다. 갈수록 지갑이 얇아지는 중산층들은 '자본주의'가 더 이상 효율적인 배분 체계를 갖고 있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와중에 터진 '땅콩회항' 사건은 여기에다가 1%가 99%를 제압하는 '착취'의 이미지를 덧씌웠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벌 3세를 바라보는 이런 대중의 인식은 이제 3세 경영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국내 경제 상황에서 재계에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닐 것이다.
특히 재벌 3세들은 요즘 '아버지를 잘 둬 능력이 없음에도 초고속 승진하고 국외 유학을 통해 글로벌 감각을 익혔으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편하게 자라 났으며 재벌 1, 2세와 달리 사회적으로 고립돼 끼리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낙인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재벌의 비중과 우리나라 가업승계 시스템이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들을 감안할 때 재벌 3세들에게 이런 낙인을 찍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성공한 3세 경영자를 만드는 일은 우리 경제 수준과 시스템을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그들을 고립시킬 게 아니라 소통의 장으로 끌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재계 인사들과 사석에서 만나면 빼놓지 않고 3세들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이해 관계의 차원이 아니라 생사 여탈을 쥐고 있는 오너 이야기에 대부분의 인사들은 손사래를 치며 조심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그쪽 자제들은 다르지 않느냐, 겸손하고 교육을 잘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넌지시 운을 떼면 그제서야 오너2~3세들과 얽인 일화들을 조금이나마 들려 주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선망과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재벌 3세', 그들의 세계와 최근 경영행보를 들여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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