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벌3세]가문 '이단아'에서 광고계 '샛별'로[박서원 오리콤 CCO]가업과 무관한 튀는 이력..계열 첫발, 경영평가 서막
김장환 기자공개 2015-01-26 06:52:00
이 기사는 2015년 01월 19일 08: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빡빡 깎은 머리에 팔뚝부터 몸 곳곳에는 문신까지 새겼다. 대로변에 서서 네모난 콘돔곽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상표 광고를 한다. 개성 강한 외모에 톡톡튀는 언행. 대중들 앞에 나서 소통하는 것에 서툴지 않다. 자신을 숨기며 때로는 다른 신분의 사람임을 드러내려 노력하는 여느 재벌가(家) 자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아들 박서원 오리콤 최고광고책임자(CCO·사진)에 대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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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주를 이뤘던 친인척들과 비교해보면 그는 두산가에서 그야말로 '이단아'였다. 단국대 경영학과를 정원 미달 덕에 간신히 합격했지만 대학 생활도 엉망이었다. 4.5만점에 0.8, 0.6 학점을 받아 잇따라 학사경고를 받았다. '학사경고 3번 연속이면 제적'이란 소리를 듣고 자퇴 후 서둘러 유학길에 올랐다.
웨스턴미시건 대학으로 첫 유학을 떠나서도 순탄한 학업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기는 마찬가지다. 사회학, 심리학, 기계공학 등 전공만 4차례에 걸쳐 바꿨다. 흥미를 느끼지 못한 탓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전공이 시각디자인. 이때부터 박 CCO의 삶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놀기'에 미쳤던 그가 '디자인'에 미쳤고, 디자인은 그를 '광고쟁이'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다.
군 제대 후 27살 늦은 나이에 디자인 명문 대학인 뉴욕 스쿨오브비쥬얼아트(SVA)에 입학한 그는 이전과 달리 엄청난 열정으로 학업을 이어갔다. 하루 2시간만 자고 그림을 그렸을 정도다. "한 장의 과제를 주면 100장을 그려 제출해 학교에서 '미친놈'으로 통했다"고 한다.
디자인 학교 유학 당시 박 CCO는 자신의 집안을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다른 재벌가 자제들처럼 경영학과 졸업 후 가업을 물려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 길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여느 재벌가 자제들처럼 어려서부터 가세(家勢)에 기댄 평생의 삶을 꿈꿔보지 않았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그런 생각은 없다.
박 CCO는 졸업 후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동기생 4명과 함께 광고회사 '빅앤트'를 설립했다. 집안의 도움으로 시작한 것이 아닌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만든 회사다. 사업 시작 후 초반에는 한 달 100만 원도 안되는 돈을 벌었지만 일이 좋아서 가슴이 설레었다고 말한다.
빅앤트가 광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국제 5대 광고제에 출품한 반전 포스터 '뿌린 대로 거두리라'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다. 이후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뉴욕 원쇼에서 '북쉘브', '사람 모양의 투명 재떨이' 등 빅앤트 작품이 3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어쩌다 운이 좋아 한방'이란 주변의 인식을 단번에 날려버린 계기가 됐다. 아울러 두산가의 '이단아'에서 광고계 '샛별'로 거듭난 순간이기도 했다.
박 CCO가 광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두산그룹도 여느 재벌가 자제와 다른 그의 삶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두산그룹 광고 계열사 오리콤 CCO(부사장)로 그를 앉힌 일이 대표적이다. 박 CCO가 회장 친족인 탓에 빅앤트가 관계사로 올라 있기는 했지만 두산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광고회사인 빅앤트가 제조업 영역인 콘돔사업을 했을 정도다. 청소년 미혼모, 낙태, 성병 등 사회적 문제 의식을 담았다. 두산그룹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과연 이 같은 사업을 빅앤트가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박 CCO의 콘돔사업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일화도 숨겨져 있다. 이로 인해 박용만 회장이 곤란(?)에 처한 일이다. 박 회장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잘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은 실바노, 박 CCO는 루돌프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 생명운동본부에서는 박 CCO의 콘돔사업에 우려를 표하는 서한을 박 회장에게 직접 전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性)에 비추어볼 때 콘돔 피임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였다.
장고를 거듭한 박 회장은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피임에 반대하는 것인 줄은 몰랐지만 아들이 직접 동업을 하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섣불리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아들이 의지를 갖고 하는 사업에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관여하지는 않겠다는 의중이 잘 드러난 일화다. 실제 박 회장은 빅앤트와 박 CCO의 행보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린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박 CCO가 말썽을 부리는 것을 걱정하는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사람은 자기가 알아서 크는 것"이라고 웃어 넘기기 일쑤였다고 한다.
두산그룹에서는 오리콤에 박 CCO를 영입하는 것을 두고도 상당한 고민을 했다. 회장의 아들을 갑작스럽게 광고최고책임자로 앉히게 될 경우 '낙하산' 등 외부의 비판적 시선이 부담됐던 탓이다. 하지만 박 CCO는 빅앤트를 통해 소위 광고쟁이로서 한 번도 이루기 힘든 무수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인재였다. '스펙'으로 따지면 어떤 인물보다도 적합했다.
오리콤에 부임 후 박 CCO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팀의 개편이다. 콘셉트, 캠페인 솔루션, 캠페인 코어, 크레이티브 밸류 등 기존 팀을 뒤엎고 새롭게 정비를 완료했다. '이것저것팀'이란 부서도 눈에 띈다. 톡톡튀는 박 CCO의 크레이티브 생각이 잘 담겨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과거 이력을 볼 때 오리콤을 과거 그 어떤 시기보다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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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전통적으로 '형제경영'을 이어온 두산에서 아직까지 그가 박용만 회장의 뒤를 잇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박용만 회장 이후 그룹 회장직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두산 회장이 물려받게 될 것이란 관측이 중론이다. 박정원 회장은 이미 2012년 ㈜두산의 지주부문 회장직을 맡아 업무를 수행해오고 있다. 시기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멀지 않은 시기 내에 두산이 박정원 회장 단독 체제로 돌아서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형제경영의 특성상 언젠가 박 CCO의 순번이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다. 비록 오리콤이 중공업 중심의 그룹사와는 거리가 먼 사업 영역을 영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보여준 경영성과 평가가 박 CCO를 향후 다른 위치로 향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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