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벌3세] '경청'의 리더십…'후계 리스크' 털까[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삼성 '리더십 시프트', 시스템 경영 이끌어
문병선 기자공개 2015-01-15 08:45:08
이 기사는 2015년 01월 09일 09: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면 크게 기우뚱거리는 회사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니와 프라다가 대표적이다. 소니는 모리타 아키오 창업자가 1999년 폐렴으로 숨을 거둔 이후 빠르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프라다는 창업자 마리오 프라다가 1958년 사망하자 급격하게 쇠퇴했다.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은 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프라다는 파산 위기 직전까지 갔다가 손녀가 기업을 물려받은 후에 가서야 살아나게된다. 두 회사 모두 후계자 양성에 실패한 게 쇠퇴의 결정적 이유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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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없어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많은 기업이어서 승계 리스크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아직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으로 권력이동이 단행되며 '후계자 리스크'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이건희는 '이재용'이 아닌 '시스템'을 택했다
1968년 미국에서 태어난 이재용 부회장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를 나왔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5년간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 재학했다. 박사 학위를 받지는 않았고 수료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가 최초 삼성그룹에 입사한 시기는 1991년 12월이다. 공채 32기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리고 일본 유학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경영수업의 연장이었다. 미국 월가의 유명 최고경영자(CEO)들과 잭 웰치 전 GE 회장 등 거물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넓힌 것도 이 시기다. 넓게 보면 후계자 수업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 결혼은 미국 유학 중이던 1998년 6월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 임세령 씨와 했다. 지금은 이혼 상태다.
그는 유학 중이던 1995년 비상장기업이던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매입해 이들 기업의 상장과 함께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 이 자금을 종잣돈으로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 회사인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를 샀다. 계열사 주식을 매입한 시기와 그가 유학 중이던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은 이미 이때부터 그가 삼성그룹 3대 총수로 낙점됐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여년전부터 경영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던 이 부회장을 그룹 후계자로 낙점했을까. 대부분의 부자간 상속 관계에서처럼 아들이니까 당연히 그에게 물려 주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를 후계자로 선택했을까.
경영권 세습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기업들도 2, 3대까지 경영권 대물림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 의류업체인 베네통사를 비롯해 자동차회사 피아트, 언론재벌 피닌베스트그룹, 세계적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삼성의 지배구조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등은 총수의 아들, 딸, 조카가 경영을 이어받았다.
347년 전통의 독일 제약업체 머크의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셰이블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족 회사의 강점은 빠른 의사결정이다." 스위스 로잔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의 요아힘 슈바는 "가족경영 기업의 소유주들은 어디서 결정을 내려야 할 지를 안다. 그것은 신뢰를 가져다주며 기업의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고 했다.
2005년 들어 일본 굴지의 미디어그룹 후지 산케이와 후지 TV의 경영권 쟁탈전에 뛰어들어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인터넷기업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 사장은 일본 기업의 리더십 부재를 들춰낸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일본의 대기업이 성장을 멈춘 것은 한국의 삼성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회장이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주위 관계자들은 "왜 이재용인가"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답을 자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을 하나의 그룹 시스템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봐야 한다. 전문 경영인은 이건희 회장처럼 구심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오너가 아니면 그 정도 장악력이 나올 수 없다."
아무리 아들이 하나뿐인 이건희 회장이라도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에 자질이 없었다면, 그리고 삼성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움직이는데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면 그를 후계자로 낙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을 선택한 것은 결국 삼성이라는 시스템을 선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조용히 리더십 쌓아가는 '우보천리(牛步千里)' 행보
이건희 회장의 판단은 최소한 틀리지는 않았다.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웠던 2014년 5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약 8개월간 삼성은 스마트폰 사업이 일시적으로 부진한 것을 빼곤 사실 큰 변화가 없다. 삼성그룹 고위 경영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을 보필해 최고의사결정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리고 있다. 되레 걱정은 밖에서만 자주한다.
2013년 하반기부터 진행된 섹터별 출자구조 단순화 작업이나 효율적 사업구조조정 작업 역시 이 회장 부재시에도 이 부회장의 재가 아래 중단없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삼성이라는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이건희'를 받아들였고 '이건희'라는 CEO는 본인을 대신해 삼성이 이재용을 받아들이도록 터전을 닦아 놓았던 셈이다. 이는 권력이동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앞서 언급한 소니나 프라다의 사례는 모두 후계자 양성에 실패했었던 경우다. 100년 넘게 가족 경영을 하기로 유명한 유럽 주요기업들은 방식은 다르지만 삼성과 같이 미리 승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후계자 양성을 성공시켜 놓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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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의 강점을 이야기할 때 조부 때부터 내려오던 '경청' 자세가 자주 거론된다.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남의 말을 먼저 들으라'는 조부와 부친의 가르침이다. '대한민국 상위 0.1%의 자식교육(이규성 作)'이라는 책에 따르면 '경청'은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내려온 가풍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아들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붓글씨로 쓴 '경청'이라는 글귀를 주었다. 이 가르침은 삼성에서 총수가 가져야 할 덕목을 가장 함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를 만나 본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고 잘난체 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상속이 이루어지는 시점에 가서야 회장으로 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후계수업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에 임명되면서부터다.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 2009년 삼성전자 COO 겸 부사장, 2010년 사장, 2013년 부회장을 달았다. 상무보에서 부회장이 되는 데 12년이 걸렸다.
초고속 승진이라면 승진이지만 이미 후계자로 낙점해 놓았다는 점에서 보면 이 회장은 이 부회장을 조금씩 전진시킨 것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보폭을 한 단계씩 올리는 효과도 있었고 삼성이라는 시스템이 '이재용'이라는 최고 정점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았을 시기엔 그룹 전체 시스템을 관장하며 탁월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애플, IBM, AT&T, 소니, 닌텐도 등 전세계 주요 기업 CEO들과 친분을 쌓았다. 미국 정계 인사들은 물론 중국 정계 인사들과의 교류도 부쩍 늘렸다. 이는 이 회장과는 다소 다른 행보다. 이 회장은 한국의 삼성을 글로벌의 삼성으로 바꾸는 게 소명이었다. 이 부회장대에 와서는 글로벌 속에서 삼성을 깊게 뿌리내리게 하는 소명이 더 중요한 지 모른다.
삼성 스마트폰이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최고가 된 때가 바로 이 부회장이 COO를 맡고 있던 때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스티브 잡스와 회담을 해 삼성 부품을 아이폰에 사용토록 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 부회장은 스티브 잡스 장례식에 초대된 유일한 삼성의 중역이었다.
◇이재용은 누구인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일화 하나. 이 부회장은 서울대 동사과(동양사학과) 87학번으로, 동기들과 지리산 종주를 한적이 있다. 지금이야 1박치기 여행 일정으로 지리산을 등반하는 일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지리산 종주는 일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국내 최대 재벌 자제가 대학교 동기들과 어울려 몇 일 밤을 함께 자고 산에 오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때다. 서울대 동사과 동기들은 그를 "특수 신분에 국내 최대 재벌로, 어떻게 보면 황태자인데 그런 특수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사람은 이재용 부회장이 거의 유일하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재벌이 같은 캠퍼스 라이프를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보통 사람의 일상을 전혀 알지 못하고 모른다고 해서 당황해 하지도 않는다"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또 대중과의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는 이 부회장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졸업 후에도 동기들 모임에 이따금 찾아와 술값을 계산하고 허물없이 지냈었다는 전언이다.
대조적으로 서울대 82학번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딸은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 경호원을 대동해 학교를 다녔고 입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엔 재벌가와 권력가들이 학내에서 만큼은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었던 때였다. 이 부회장이 얼마나 파격적으로 대중들과 스킨십을 했었는지를 알려준다.
동양사학과를 학사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의 서울대 동기는 "아마 이 부회장과 이 회장은 중국과 수교를 하기 전인 1987년 전후부터 중국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것 같다"며 "여러 곳에서 인문학을 배우기 위해 이 부회장이 동양사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해석을 하고 있으나 동기들 사이에서는 중국을 공부하기 위해 동양사학과를 지원했었던 것으로 많이들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소한 그의 지인들은 이 부회장의 중국 식견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전문가로 성장한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기 일부는 요즘도 이 부회장과 사적 자리를 갖고 중국 정치·경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겸손함, 매너 등도 익히 잘 알려진 그의 주요 성품이다. 이와 관련 그는 요즘은 외국에 나갈 때 전용기를 자주 애용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국적항공기를 자주 이용했다. 일본과 같은 단거리 노선은 대부분 민간항공기를 탔다고 전해진다. 그와 같은 항공기에 탔었던 재계 한 관계자는 "반듯한 외모에 어울리듯 늘 겸손했고 승무원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며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매너좋고 호의적이고 잘생겼다는 호평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1968년생이니 2015년 현재 한국나이로 마흔여덟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도 어느새 2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 부회장을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들, 예컨대 삼성 내부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간접경험을 통해 '이렇다더라...'하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겸손하다'는 표현을 쓴다. 실제 그는 '겸손의 화신'과도 같다. 주변의 나이 많은 간부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그저 적당히 존대만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존중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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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 주주인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을 증명할 트랙레코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며 "그의 위기 관리 능력과 그의 사업 비전에 대한 정보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후계 작업 및 상속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삼성전자 주주의 동의를 구하는 일도 숙제로 남아 있다. 이건희 회장을 믿었던 주주들이 그가 선택한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같은 지지를 보낼 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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