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1월 21일 11: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사려는 쪽이 많으면 으레 가격이 오른다. 이런 초과수요 상황에선 파는 쪽의 가격 협상력이 더 커서 그렇다. 초보 수준의 경제 교과서 첫 장에나 나올 법한 소릴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시장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앞서 나온 명제는 구비된 시장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시장은 불특정 다수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균질한 재화를 계속 거래하는 장(place)을 말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기능이 작용할 수 있는 개념적 공간이면 시장이라 불릴만 하다.
지금부터 논하려는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은 어찌보면 시장이 아니다. 일단 거래의 대상이 되는 기업 또는 사업(자산)이 균질하지 않다. 동일한 품목을 만드는 여러 기업들이 동일하다 할 수 없다. 경영자의 자질이 다르고, 생산설비의 구입 연도도 다를 것이다. 심지어 한번 M&A 거래가 이뤄졌던 기업이 몇 년 후 다시 거래돼도 전후의 거래 대상이 달리 취급된다. 각 거래 시점의 기업 상황이 똑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M&A는 공산품 사고 팔듯이 빈번하지도 않다. 그래서 시세(market price)라는 걸 상정하기 곤란하다. M&A 대상 기업이 상장회사라도 그 기업 주가는 거래 당사자간의 협상 가격을 정하는데 참고사항이 될 뿐이다. 당사자간 가격 흥정은 대상 기업이 속한 산업의 전망, 대상기업에 고유한 특성 등 뿐 아니라 인수자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판이해진다. 인수자가 누구냐에 따라 M&A 기업의 미래가치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의 본질적 속성인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발견 기능이 M&A시장에서도 잘 작동하리라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물론 수급이 가격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수하려는 자가 많으면 당연히 호가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반대로 경쟁 매물이 등장하면 매도자로서는 김이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업 거래가 일반 재화를 매매하는 것보다 수급 요인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KT렌탈 매각 입찰이 일주일 남짓 남았다. 예비실사에 초청받았던 쟁쟁한 인수후보들은 이제 실사를 슬슬 마무리하고 응찰 가격을 과연 얼마로 써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KT렌탈 매각 절차는 매각자인 KT 입장에서 보면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하다. 인수 후보들의 면면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수조 원의 자금력을 갖춘 대형 사모펀드(PE)까지 쟁쟁하다.
이 정도면 KT렌탈 매각 가격에 대한 KT 그룹 경영진들의 눈높이가 천장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KT렌탈 매각 거래에 관여하는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거래에서 가장 우려할만한 변수는 매각 가격에 대한 KT 경영진의 눈높이란 소리도 나온다.
한달 여 전 치렀던 예비입찰에서 예비응찰 가격의 스펙트럼은 꽤 넓었다고 한다. 6000억 원대부터 많게는 9000억 원대 가격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는 후문. 매각하는 쪽이야 가격이 비쌀수록 좋으니 예비입찰에서 나온 최고가격 근방에서 거래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거다.
하지만 실제 본입찰에서 제시될 가격들이 KT의 이같은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킬지는 장담 못한다. 한달이 넘는 예비실사를 통해 KT렌탈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인수 후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도 가늠해 본 후 써내는 가격이 기업 사정을 숫자로만 보고 대충 써내는 예비가격과 같을 리가 없다. 어떤 인수후보는 새차 5만대로 렌트카 사업을 새로 론칭하는 방법과 KT렌탈 인수하는 것 중 뭐가 나은지 따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KT렌탈 인수 가격이 비싸면 거래 자체가 불발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아무리 원매자가 많아도 말이다. 이럴 땐 애초에 왜 팔려고 했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막연히 만들어진 기대가격 때문에 거래를 깬다면 그 기업은 전략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지 모른다. 검증도 안된 '헐값 매각 시비' 걱정부터 하는 것도 '주인 없는 기업이 다 그렇지'란 비아냥을 듣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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