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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펀드' 아닌 '벌처펀드'다 ['엘리엇' 리포트]①1977년 폴 싱어 설립… 최근 10년간 110억달러 벌어들인 포식자

정호창 기자공개 2015-06-23 08:40:00

[편집자주]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간 합병안을 반대하고 나서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과연 엘리엇의 궁극적 노림수는 무엇일까. 소수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행동주의 투자가'인가. 아니면 단순 '기업사냥꾼'에 불과할까.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더벨은 엘리엇의 과거 투자사례 및 재계·IB업계·외신 등의 시각을 통해 이같은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슈를 종합적으로 다시 점검해 보기로 했다.

이 기사는 2015년 06월 22일 11: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변호사 출신의 폴 E. 싱어가 1977년 설립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싱어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모은 자금에 가족·지인들의 투자금을 더해 130만 달러(약 14억 원)를 종자돈으로 그의 가운데 이름(Elliott)을 딴 회사를 세웠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대한 공격에 나서며 엘리엇어소시에이츠(Elliott Associates)와 엘리엇인터내셔널(Elliott International) 두 가지의 펀드를 운영 중이며, 전체 운용자산(AUM)이 미화 260억 달러(약 29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스스로를 주주가치 증대와 도덕적인 기업지배구조라는 바탕에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엘리엇의 두 펀드 중 삼성물산 지분 투자에 나선 곳은 운용자산 145억 달러(약 16조 원)를 자랑하는 엘리엇어소시에이츠다.

투자은행(IB)업계와 외신 등의 분석에 따르면 엘리엇이 보유한 총 자산 규모는 345억 달러(약 38조 원) 수준이며, 39개 회사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 5억 5000만 달러(약 6000억 원) 정도였던 엘리엇의 주식 자산가치(Equity AUM)는 2014년 114억 달러(약 12조 6000억 원)로 급증했다. 연 평균 약 35.4%, 10년 간 2000%를 상회하는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셈이다.

IB업계와 외신 등에서는 이 같은 급성장 배경에 대해 기업 인수합병(M&A) 등 이벤트 중심(Event-driven) 투자법부터 공매도까지, 수익 창출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엘리엇의 무차별적이고 공격적인 투자전략 덕분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엘리엇을 10년 가까이 추적 보도해 온 미국의 유명 탐사전문 기자 그레그 팰러스트(Greg Palast)는 자신의 저서 '벌처스 피크닉(Vultures' Picnic)'과 '빌리어네어&밸럿밴디츠(Billionaires&Ballot Bandits)'에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벌처(Vulture)펀드'라고 단언한다.

팰러스트 뿐 아니라 IB업계 전문가와 외신들 역시 엘리엇에 대해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벌처펀드 중 하나"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일부 외신은 "전환사채(CB) 차입거래를 가장 먼저 시작한 벌처펀드"라고 엘리엇을 묘사하고 있다. 엘리엇이 최초의 벌처펀드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적어도 해당 분야의 '선구자'란 분석에는 업계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벌처펀드란 명칭은 동물의 시체를 파먹고 사는 대머리독수리를 지칭하는 단어 'Vulture'에서 유래됐다. 벌처펀드가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악랄한 수법으로 투자대상을 공격하는 모습이 공중을 배회하다 약해 보이는 먹이를 발견하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대머리독수리와 닮았다는 점에서 붙은 이름이다.

벌처펀드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투자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부실기업 채권은 물론 저개발국가의 국채도 타깃이다. 1980년대 초 중남미 지역의 부실기업을 주 타깃으로 삼았고 90년대 들어 캐나다와 유럽 기업으로 활동지역을 넓혔다. 특히 9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전역이 벌처펀드의 사냥터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합병이나 기업분할 등 이벤트가 예상되는 기업의 주식을 선점한 뒤 이득을 취하는 이벤트 드리븐(Event-driven)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디폴트 및 그리스 사태의 이면에도 벌처펀드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는 펀드 중 하나가 바로 엘리엇이다.

'벌처펀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지배구조펀드'와는 다르다는 게 투자업계 설명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활동한 장하성 펀드나 라자드펀드 등은 소수 지분을 매입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따라 펀드 수익률을 올리는 펀드"라며 "벌처펀드는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 펀드의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요구조건만 내거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 기업 지배구조를 후퇴시키면서도 펀드의 수익성을 높이려는 자세가 벌처펀드와 지배구조펀드의 차이점이라는 설명이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도덕적이고 존경스러운 펀드가 들어와 기업에 특정 요구를 하는 것과 벌처펀드가 요구를 하는 건 그 순수성에 차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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