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6월 23일 07시1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국내 재계의 최고 관심사는 단연 삼성물산과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분쟁이다.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을 발표하자 엘리엇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국내 증권시장에 삼성물산 주주로 등장해 회사와 반목하고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불공정해 이번 합병이 '불법'이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엘리엇은 회사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원에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등 삼성물산과 전면전에 나선 상태다.
엘리엇의 주장은 제일모직에 비해 삼성물산의 자산 규모가 훨씬 큰 데 합병비율을 두 회사의 주가를 기준으로 1:0.35로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자산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재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결정한 것은 자본시장법의 규정에 따라 이뤄진 일이다. 엘리엇의 주장대로 자산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재산정하게 되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국내 증권시장에서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셈이다.
엘리엇은 상장법인의 경우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결정하도록 규정한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합병비율의 적법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국내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매우 오만한 주장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합병비율을 자산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사법체계 뿐 아니라 주권까지도 무시하는 요구다. 각국의 금융관련 법률과 규정은 해당 국가나 시장의 특성에 맞게 제정되는 것이지 미국 등 특정 국가의 제도나 법률을 전세계 모든 국가가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국내 자본시장법이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도록 규정한 것은 입법과정에서 국내 금융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산 가치는 회사나 대주주 등의 불순한 목적이나 의도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공정한 가치 산정의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는 분석과 판단에 따른 것이다.
우리 법원은 오랜 기간 일관성 있게 '인위적 조작이나 천재지변 등 외부변수 없이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는 기업가치를 공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사법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는 자유경쟁시장에서 재화의 '가격'은 시장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판단에 따라 합리적이고 조화롭게 자동 결정되고 조절된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 '보이지 않는 손'과도 궤를 같이 한다.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주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원에 주총 금지를 요청한 것도 문제다. 이는 특정 주주가 합병에 대한 다른 주주들의 의사결정 기회 자체를 박탈하고 봉쇄하는 일이다. 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월권이며, 민주 사회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다수결의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엘리엇의 반대할 권리 못지 않게 합병에 찬성하는 주주들의 권리 역시 소중하고 지켜져야 할 대상이다.
본인들의 주장과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유독 강조하는 그들에게, 끝으로 수세기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이제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로마제국의 속담 한 마디를 건넨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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