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대 평가손?…합병 무산되면 수익성 '빨간불' [국민연금의 선택은]②삼성물산-제일모직 주가 급락 가능성 "안정운용·수익제고 초점 맞춰야"
정호창 기자공개 2015-07-10 11:02:00
이 기사는 2015년 07월 10일 07: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안건을 다룰 주주총회를 앞두고 시장의 이목이 온통 국민연금에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의결권 지분 11.21%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서 합병안 가결 여부를 결정지을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국민연금 안팎에선 "캐스팅보트를 쥔 게 아니라 '독배'를 들고 있는 격"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총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날 선 비판과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탓이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안에 찬성할 경우 "재벌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엔 "국익을 고려치않고 외국 투기세력의 편을 들어 국부유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마주하게 된다. 찬·반 결정이 쉽지 않아 기권을 선택하게 되면 "단일 최대주주로서 책임과 권한을 방기했다"는 질책이 뒤따를 전망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퇴로가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 셈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안팎에선 정치적·정서적 판단으로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로지 '수익성' 관점에서만 사안을 바라보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이자 지상과제인 '기금의 안정적 운용과 수익 제고'에만 초점을 맞춰 외부의 비전문가 집단이 아닌 기금운용 전문가들이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수익성 관점에서 이번 사안을 바라보면 국민연금 입장에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성사가 투자수익 확대에 훨씬 유리하다는 게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95%(1867만 1098주)와 제일모직 지분 5.04%(679만 7871주)를 보유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9일 종가 기준 각각 1조 1874억 원과 1조 1862억 원으로 두 회사를 합쳐 총 2조 3737억 원 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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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두 회사 주식을 거의 비슷한 규모로 갖고 있기 때문에 합병비율의 유·불리에 따른 손실 발생 논란에선 사실상 자유롭다. 삼성물산 합병안에 반대하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등이 합병비율이 불공정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일방적인 손해를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그대로 인정한다 해도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에서 손해를 보는 만큼 제일모직에서 이득을 얻게 되기 때문에 합병 성사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합병비율 불공정 논란이 아닌 '합병 성사와 무산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에 초첨을 맞춰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증권업계에서는 합병이 성사돼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 발표일 두 회사 주가가 모두 상한가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상승세가 이어진 사실이 시장에서 확인된 합병에 대한 평가"라며 "ISS도 이런 시장의 긍정적 평가에 대해 인정했으며, 합병 후 탄생할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맡게 될 기업이라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과실을 누리면서 기업가치가 계속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합병이 무산될 경우 두 회사의 주가는 합병 발표전 수준으로 돌아가거나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삼성물산의 경우 합병안 반대를 권고한 ISS조차 급락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ISS는 "코스피 지수 움직임을 감안하면 합병 발표가 없었을 경우 삼성물산 주가는 7.3% 떨어졌을 것으로 추산되며, 합병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단기적으로 주가 하락이 22.6%에 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서에 기술하고 있다.
국내 증권가의 시각도 비슷하다. 한 애널리스트는 "합병 무산시 제일모직 주가는 합병 발표 이전 수준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고, 삼성물산의 경우 건설사업부가 단독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영업가치가 2014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어 주가의 상승 가능성보다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ISS가 제시한 밸류에이션에서 오류를 바로잡은 뒤 그 분석법 그대로 삼성물산의 호황기 실적을 적용해도 적정 가치는 주당 6만 원을 밑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시장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합병 무산 후 삼성물산 주가가 20% 이상 급락할 경우 국민연금 보유지분의 가치는 9500억 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현재보다 2300억 원 이상 평가손실을 입게 되는 셈이다. 제일모직 주가가 합병 발표 이전 수준인 15만~16만 원대로 돌아갈 경우에도 1000억 원 이상의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ISS가 합병 무산 후 삼성물산 주가가 단기 하락하겠지만 장기적으론 적정 가치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무책임하고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며 "수익성 관리를 최우선해야 하는 국민연금은 막연한 기대보다는 현실성 높은 주가 하락에 우선순위를 두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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