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YB가 뛴다]'정중동 카리스마' 전문경영인 입지 다진다[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사우디 프로젝트 성과, 울산 상주하며 흑자전환 총괄
강철 기자공개 2016-01-19 07:57:56
이 기사는 2016년 01월 12일 07: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5년 11월 24일 '아산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은 범현대가 오너일가 및 임직원, 정재계 주요 인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언론사 기자들도 대거 행사장을 찾아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찬 인파 사이에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꼭 빼닮은 젊은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정몽준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총괄부문장(전무)이었다. 정기선 전무는 행사장에 마련된 다과를 즐기며 부친과 담소를 나누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공식 행사가 끝난 후 취재진이 정 이사장과 정 전무를 둘러싸고 정 이사장의 경영 복귀 문제와 당시 상무였던 정 전무의 승진 가능성 등을 질문했다. 그러나 원하는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정 이사장은 "오늘은 이런 자리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고, 정 전무는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 전무를 가까이에서 보며 손꼽히는 재벌의 후계자답지 않게 소탈하고 수줍음을 많이 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정 전무는 대학(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군 복무(ROTC 43기), 미국 유학(스탠퍼드 MBA) 시절 현대가 자제인 게 드러나는 것을 무척 조심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대가 3세들이 전반적으로 겸손하고,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대외적으로는 조용한 행보를 보이지만 중요한 경영 사안을 결정해야 할 때는 강한 추진력을 보여준다. 정 전무 역시 이러한 가풍을 이어받은 듯 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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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이 같은 정중동(靜中動)의 면모를 보여주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Aramco)와의 전략적 사업 양해각서(MOU) 체결이 그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 아람코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주되는 선박 수주 △합작 조선소 건립 △선박용 엔진 중동 수출 △플랜트 수주 등을 추진하며 협력 관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아람코 프로젝트는 정 전무가 총괄했다. 정 전무는 지난해 3월과 4월 알 필리 아람코 회장과 알 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직접 의전에 나섰다. 테스크포스팀(TFT) 구축,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의 실무 협상도 정 전무가 진두지휘했다.
MOU 체결 직후 단행된 현대중공업그룹 임원인사 명단에 정 전무의 이름이 포함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정 전무는 2013년 6월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한 지 2년 반만에 전무에 올랐다. 상무 직함을 단 건 1년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초고속 승진이다.
2년 반이라는 짧은 실무 경험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입사 초부터 다양한 업무를 두루 거쳤기에 가능했다. 정 전무는 기획실에 있으면서도 선박영업, 생산, 재무, 연구개발(R&D) 등 업무 전반에 관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매년 선박 박람회에 참석해 글로벌 선주사 오너들을 만나는 등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람코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최길선 회장, 권오갑 사장 등 핵심 경영진은 이 사업을 정 전무에게 전적으로 일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성공적인 조기 안정화는 현대중공업은 물론 정 전무의 향후 입지를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정 전무의 정중동 행보가 올해도 이어질 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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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무는 올해부터 기획 외에 영업본부도 관리한다. 가삼현 사업대표(부사장)와 함께 그룹선박영업본부를 총괄하며 단순 후계자가 아닌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이에 따라 작년보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한층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의 발굴도 역점을 두고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룹 전체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흑자 달성'을 위한 재무 전략 수립도 정 전무에게 주어진 역할 중 하나다. 업계에선 현대중공업이 2014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조 단위의 대규모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흑자전환은 정 전무가 최우선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라 할 수 있다.
정 전무는 승진 이후 울산조선소에서 상주하고 있다. 선박 수주 현황을 면밀하게 점검하는 한편 생산 실무자들과 공정 스케줄 조정, 기술 적용, 안전 관리 등을 논의하고 있다. 조선소에 마련된 숙소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기거하며 이른 새벽부터 현장을 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동 서울 사무소를 방문하는 건 손에 꼽힐 정도다. 11층에 정 전무의 자리가 마련돼 있으나 사실상 없는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실제로 서울 사무소는 정 전무가 방문할 때 의전을 담당하는 비서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정 전무가 과한 의전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한다는 후문이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선박 수주 계약 관련 일정은 빠지지 않고 챙기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계동 사옥에서 열린 KSS해운과의 초대형 가스운반선 계약 체결식에 가삼현 부사장과 동석했다. 영업본부 총괄부문장으로서 앞으로 국내외 수주 계약 체결식에 매번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현대중공업의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노사 관계 정립'에도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금단체협상을 비롯한 노사 관계 유지는 권오갑 사장이 맡고 있다. 정몽준 이사장도 경영 초기에는 선박영업과 생산에 집중하며 경력을 쌓은 후 점차적으로 노사 이슈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정 전무가 아직 30대 중반으로 젊은 축에 속하고, 생산 전반의 공정을 구석구석 파악 중인 만큼 노사 협상 테이블에 앉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동조합이 정 전무가 본격적으로 후계 승계에 나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노동조합은 지난해 임금단체협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 전무와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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