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1월 21일 11: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기업 집단에 적용되는 지주회사 제도는 본래 특혜다. 지주회사가 되고나면 할 수 없는 금지사항, 이른 바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율이 신문 등에 단골메뉴 마냥 오르는 탓에 "규제 아닌가"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순전한 오해다.과거의 공정거래법이 지주회사 형태의 기업 지배구조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은 경제력 집중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어서다. 실제로 피라미드식 소유구조를 완성하면 정점에 위치한 지배회사만 장악하면 아래 회사들을 실효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일종의 '지배력의 레버리지'를 무한히 끌어 쓸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업집단의 운명은 정점에 위치한 개인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다.
1999년 공정거래법이 순수지주회사를 허용한 것은 IMF 외환위기 직후 노정된 기업 구조조정 작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방편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실제 금융위기를 맞고 보니 소수지분으로 얽히고 설킨 재벌집단의 순환출자 사슬이 피라미드식 지주회사 구조보다 더 위험해 보였던 것이다. 차라리 지주회사를 합법화해 기업집단 지배 통로를 열어주고, 대신 제반 잠재 위험요인들을 차단하기 위해 지주회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지주회사 행위제한. 공정거래법 제8조의 2)을 지정해 규율키로 한 것이다.
이 규율 중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는 경우가 아니면 증손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없도록 금지'했는데, SK플래닛이 로엔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지분을 2013년 9월에 사모투자회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펀드에 매각하고, 그 해 12월 계열에서 제외한 것이 바로 이 규율에 기인한 것이었다.
최근 AEP가 로엔을 카카오에 매각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장이 시끄럽다. 어피너티가 시쳇말로 대박을 내고보니 그렇게 팔 수 밖에 없었던 SK가 안타깝다는 게 주된 논조다. '죽쒀서 개줬다'는 막말까지 들린다. 2013년 당시 매각을 주도했던 서진우 SK플래닛 사장이 곤란한 지경에 몰렸다는 안타까운 소리도 들린다.
이런 상황은 온당치 않다. SK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당국이 용인한 것은 증손회사 보유 제한 등 제반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율을 그룹이 지킨다는 약속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서진우 사장은 매각 당시 어피너티 외에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까지 끌어들여 매각 가격을 끌어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사다. 당시 지분을 남겨 이번 카카오와의 거래로 막대한 추가차익을 얻게 만든 것도 알고보면 서 사장의 공이다.
AEP가 로엔을 인수한 후 가치 증대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않고 막대한 차익을 챙겨가는 것처럼 여겨서도 안된다. 로엔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AEP가 인수하기 직전 500억 원에서 800억 원으로, 5000억원 남짓이던 로엔의 시가총액은 2조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가치란 본래 잠재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발견하고 발현시키는 것이 어찌보면 더 중요하다. 최고의 경영자를 기용하고, 최적의 성과보상 체계를 갖추도록 한 결과로 막대한 차익을 거두게 된 것은 AEP 스스로의 공이다.
혹여 이번 사례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율을 완화하자는 의도라면 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모두에 언급했듯 지주회사 제도는 원래 허용되지 않는 일종의 특혜다. 그럼에도불구 국가 정책상 필요가 분명하다면 규제 완화를 검토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것을 마치 잘못된 것 마냥 우기고 더 특혜를 주라 하는 것은 억지다. 생각해보라. '한 외국 사모펀드가 M&A로 큰 돈 벌었다고 그런 투자기회 안주도록 기업에게 특혜를 더 주라'는 식인데, 외국펀드가 대박을 낸 것이 속이 좀 쓰리더라도 공정한 룰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시장을 가진 문명국가에서 대놓고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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