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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매니저, 태평성대보다 위기상황에서 빛나야" [신영, 가치투자 외길 20년] ⑧허남권 신영운용 부사장(CIO)

박상희 기자공개 2016-03-04 15:29:57

이 기사는 2016년 03월 02일 15시4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산운용업은 나이랑 연식에 상관 없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업종이에요. 이 일을 계속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과 판단의 문제죠. 아마 회사에서 직급이 더 올라가도 매니저 일은 계속 할 겁니다. 은퇴를 하게 되더라도 재능 기부라는 것도 있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매니저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1990년대 후반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라는 상품이 막 태동하던 시절 매니저로 입문해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들의 연차가 어느덧 20년 정도 됐다. 세월이 흐른 만큼 회사의 중역으로 성장했고, 업계 최고참 선배가 됐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CIO)도 그 중 한 명이다.

허 부사장이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회사를 옮기지 않고 신영자산운용이라는 곳에서만 20년 매니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이직이 잦은 운용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당장 내일 주식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수 없는 그 역동성과 예측불가함을 즐기게 됐다는 그는 과거 20년을 반추하기보다 향후 20년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 "자산운용업계 롱런..태평성대보다 위기상황시 방어 능력 빛난다"

허 부사장은 1996년 8월 신영자산운용이 설립되던 때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전까지 모회사인 신영증권에서 8년을 일했다. 신영자산운용 설립 태스크포스(TF)로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20년 동안 매니저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남권 모션 4
"운용업이란 게 굴곡이 있어요. 항해하기 어려운 바다같죠. 특히 펀드 매니저라는 직업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이 안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공모펀드는 성적표가 다 공개되고, 또 사방이 다 경쟁자잖아요. 위너만이 서바이벌에 성공하는데, 이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많았죠. 처음 펀드 운용을 시작할 때는 최소 6개월은 해 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6개월만 버티자고 마음 먹었어요. 그 다음엔 목표가 5년으로 늘었죠. 어떤 업종이든 5년은 해봐야 어디가서 뭐 좀 해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가 어느덧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거죠."

펀드 매니저 일을 시작하고 얼만 안돼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운용을 시작하고 나서 첫해 펀드 성과가 1등을 했는데, 그 다음해는 꼴등을 했어요. 주식시장 지수가 850포인트일 때 운용을 시작했는데 3분의 1 토막나면서 280포인트까지 내려갔거든요. 주가가 10분의 1 토막, 5분의 1토막 나면서 좋은 기업을 충분히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는 설명이 안 먹혔어요. '가치'라는 개념이 붕괴된거죠.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6개월 정도 지나니까 내 판단에 대한 확신이 섰어요. 주가가 200포인트까지 내려갈지언정 지금 주가는 싸도 너무 싸니까 일단 주식을 사기로 한거죠. 밸류에이션에 풀 베팅을 한겁니다."

IMF 사태 이후 5년 동안은 격랑의 시기였다. 허 부사장은 이때 가치투자에 대한 철학을 몸소 깨쳤다. 주식시장이 흔들리거나 위기론이 대두될 때도 신영자산운용의 주식형펀드가 주식투자 비중을 95% 이상으로 유지하는 이유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려움에 대한 내성이 생겼어요. 웬만한 쇼크에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게 된거죠.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때 깨달았고요. 자산운용에서 롱런한다는 것은 태평성대기에 어떻게 하느냐가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어려울 때 어떻게 방어를 잘 하느냐에 달렸다는 걸 체득했죠."

지난해 높은 성과를 올리며 주목 받은 젊은 매니저 세대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용대리·용과장이라고 불린 분들이 수익을 많이 냈죠. 그런데 투자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국가적 재정위기를 겪어보질 않아서인지 시류에 영합하는 과정이 많았어요. 일시적으로 단기 수익률이 높다는 게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 "금리 대비 2~3배 수익, 자산운용업 존재 이유..절대수익, 약속 지키겠다"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국내 주식형펀드를 외면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영마라톤펀드와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설정 이후 매년 평균 14~15% 수준의 수익률을 꼬박꼬박 내왔다. 허 부사장은 향후 운용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토로했다.
허남권
"저금리로 인해 자산소득자들이 생존하기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 됐어요. 1.5% 금리라면 10억 원을 은행에 넣어봤자 연간 1500만 원 이자소득을 받는 데 그치니까요. 펀드는 연금형태로 투자하는 분들이나 자산투자 하는 분들께 최소 금리의 2~3배 수준의 수익을 지속적으로 내드려야 합니다. 과거처럼 10% 목표수익률은 힘듭니다. 현재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최소 5%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게 자산운용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운용에 대한 접근도 신중해졌다. "예전에 금리가 높을 때는 큰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할 기회가 있었어요.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 기회가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잘못되면 복구할 기회가 없다는 거죠. 10%를 손해봤다 가정하면 그걸 커버하는데 최소 5년, 7년 정도 걸리는데 그걸 기다려 줄 투자자들은 없습니다. 좀 더 정밀하게, 신중하게 투자 결정을 내려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허남권 부사장은 신영자산운용이 배당주 열풍이 불어닥친 2014년 신영밸류고배당펀드로 '대박'을 터트린 이후 결산연도에 경영진의 인센티브를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샐러리가 절반은 생활비로, 절반은 세금으로 사라지는 시대에요. 자산을 투자해서 버는 게 내 자산인데 투자할 여력이 없는거죠.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법니다. 노동의 대가는 한계가 있고, 돈이 돈을 벌게 하는 구조죠. 내가 일반 직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버니까, 나보다는 직원들이 인센티브를 더 알차게 쓸 수 있을 것 같았죠.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나 할까요."

허 부사장이 그리는 향후 20년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신영자산운용에서 펀드 매니저로 활약하고 있을까. 그는 신영자산운용도 오너 회사인만큼 향후 거취는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펀드 매니저로서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신영자산운용 자체가 가치주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출이나 수익, 인지도가 계속 꾸준하게 성장해 온거죠. 제가 가치주를 운용하지만 우리 회사도 가치주처럼 성장해 온 걸 지켜봤습니다."

그는 절대 수익을 내겠다는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자산운용업은 영원한 강자가 없습니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한 번 의사결정을 잘못하면 천당에서 지옥까지 경험할 수 있죠.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찌됐든 절대적으로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겁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펀드가 상대 수익률로 1등을 한 게 무슨 상관일까요. 고객은 내 자산 늘리는 게 중요하고, 내 자산 증식이 중요합니다. 상대적인 성과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절대수익을 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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