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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성은 바나나, 동양증권 시절 가장 행복" [자본시장 재야 고수에 묻다]호바트 리 엡스타인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외이사

민경문 기자공개 2016-05-31 14:18:19

[편집자주]

진짜 고수는 공력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비록 지금은 강호를 떠나있지만 한때 자본시장을 주름잡던 실력자들은 곳곳에 숨어 있다. 머니투데이 더벨은 이들을 찾아 국내 캐피탈마켓을 둘러싼 통찰력 있는 '한 수'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 기사는 2016년 05월 27일 17시22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부터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사외이사로 재직중인 호바트 리 엡스타인(사진)의 본업은 정통 IB였다. 크레디트스위스(전 CSFB) 한국지점 초대대표, 베어스턴스 한국IB 총괄파트너, 골드만삭스 한국대표, KTB투자증권 대표, 동양종금증권(현 유안타증권) COO 겸 IB 부사장 등등. 그나마 간추린 경력이 이 정도다. 이제는 증권업계 맏형으로서 후배 멘토링에 주력하고 싶다는 그는 본인을 코치(coach)로 불러 달라고 했다.

엡스타인 이사는 스스로를 '바나나'라고 지칭했다. 피부색깔은 노란 동양인이지만 사고방식은 서양인이라는 점을 빗대서 하는 얘기다. 12살 때 미국으로 입양돼 국적은 미국이다. 양부모가 유대가문이다 보니 유대인의 엄격한 가풍도 이어받았다. 인터뷰 종종 영어를 섞어 쓰긴 했지만 한국말은 유창하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명성을 쌓은 세월만 20년이 넘는다.

한국에서 IB맨으로 지내는 동안 가장 보람을 느낀 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동양종금증권 IB부사장으로 재직했던 시절이 해피타임(happy time)"이라고 말했다. 처음 부임하던 2007년만 해도 동양증권 IB직원들의 자신감은 결여돼 있었다고 했다(특히 ECM부문). 영업일선에 나가 물 한잔 못 얻어먹고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는 것.

"개개인은 훌륭한 인재였기 때문에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물을 안 주면 물을 사가지고 가라고 말할 정도로 직원들을 닥달했다. A기업 지분 블록딜 주관 당시 에피소드 하나. 어렵게 따낸 대규모 ECM 딜인 만큼 거래 수행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했다. 공동 주관사였던 미국계 대형 IB와의 첫 미팅에는 엡스타인 부사장도 직접 참여했다.

호바트 리 엡스타인

"어차피 당신들은 한 차례 해외에서 실패하지 않았나요. 이번 블록은 국내에서 소화가 많이 되는 딜로 만들 테니 동양증권이 프라이싱을 포함한 거래 전반을 리드하겠습니다" 엡스타인 부사장은 당시 주관사단 앞에서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물론 약간의 블러핑이 섞여 있었다.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털어놓는 그다. 규모가 6000억 원이 넘는 큰 딜이었지만 동양증권 IB직원들은 여타 국내 IB와 북빌딩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했다. 결과적으로 거래에 불참한 미국계 주관사와 대조적이었다.

엡스타인 부사장 부임 이후 동양증권의 잠재력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ECM주관에서 더벨 리그테이블 기준 1위에 올랐다. 채권시장 강자라는 '반쪽짜리 타이틀'을 떨쳐낸 순간이었다. 엡스타인 이사는 "동양증권 실무진이 출석하지 않으면 주관사단 회의를 시작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센티브(incentive)제 폐지도 그가 동양증권에서 바꿔놓은 것 중 하나다. 인센티브 비율이 IB본부의 각 팀별로 따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를 없앤 것. 엡스타인 이사는 "당시 IB직원들은 자기 성과를 내는 데만 주력했기 때문에 팀간 시너지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인센티브는 내가 알아서 팀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강정호 선수의 예를 들었다. 결승타를 날렸다고 해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승리가 강정호 혼자만의 '공'은 아니라는 것. 팀웍과 개인플레이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엡스타인 이사는 직원들의 접대비 사용 또한 개인이나 팀별 배정을 없애고 본부 차원에서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동양증권과 비교하면 골드만삭스 한국대표 시절은 그렇게 행복한 건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이미 '골드만'이라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업계 안팎 뿐만 아니라 회사내에서도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골드만이 '바나나'인 저에게 원한 건 한국기업과의 지속적인 관계 강화였을 뿐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양증권처럼 새롭게 조직문화를 바꿔볼 기회는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에 주어지지 않았다. 엡스타인 이사는 "동양증권 IB에 성공한 외국 IB 의 조직을 전수한 것"이라며 " 당시 동양그룹 회장과 김병철 상무(현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등 동료 임원들의 파트너쉽 정신이 없었다면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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