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9월 26일 07:2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메리츠베트남펀드가 PB들 사이에서 화제다. 핫(hot)한 지역인 베트남에 투자하는 몇 안되는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10년 동안 환매할 수 없는 폐쇄형 구조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존 리 대표는 국내 운용업계에서 이단아다. 미국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에서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를 운용, 대박을 터뜨렸고 국내 공모펀드의 새로운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시도하고 있는, 그리고 어느 정도 정착시킨 새로운 펀드 투자 문화가 그를 이단아로 만들었다.

그의 투자 철학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안 망하는 기업에 오래 투자하면 된다'이다. 그러면서 주식에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기업의 주주(자본가)가 돼라고 강조한다. 국내 운용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키기 힘들었고 또 이에 호응하는 투자자도 적었다. 운용사의 CEO 뿐 아니라 펀드매니저의 생명이 짧기에 단기 성과에 치중했고 그러면서 투자자들 역시 펀드를 단기 투자 상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존 리 대표는 그동안의 펀드 문화를 비판하며 메리츠코리아펀드를 통해 장기 투자 철학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펀드내 주식 매매 회전율을 극도로 낮추었고 정교한 분석을 담은 자산운용보고서로 투자자를 설득하고 안심시켰다.

입바른 말과 행동은 적을 만들기 마련이다. 거기에다 펀드 성과가 좋지 못하자 존 리 대표에 대한 비난과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올 들어 메리츠코리아펀드가 두자릿수를 넘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존 리 대표에 대한 불만은 봇물처럼 터졌다. 극단적인 부류는 그를 '사기꾼'으로 칭하기까지 했다. '왜 시장 상황에 빨리 대처하지 못했냐'며 운용 전략의 수정을 바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투자자중 그의 철학에 조금이라도 동조했던 사람이라면 초심을 돌아보자. 존 리 대표가 공모펀드 시장을 살리고 있다며 극찬했던 운용업계도 마찬가지다. 메리츠코리아펀드 출시 초기 존 리 대표가 내세운 전략과 철학은 아무 변화가 없다. 단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사람들의 말, 그리고 생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아직 그 투자철학의 성과를 판단할 만한 충분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더벨은 2년 전부터 분기마다 금융회사별 추천 금융상품을 집계하고 있다. 자산관리 사업을 한다는 곳을 대상으로 했지만 초기에는 구색을 갖추지 않은 곳이 많았다. 점차 각사의 전략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짜고 추천 상품을 내놓으면서 추천 상품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추천상품을 집계하다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지난 분기 추천했던 금융상품을 이번 분기에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자산관리 사업을 한다는 금융회사들의 시계가 한분기도 안된다는 뜻이다. 물론 추천상품 가판대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해당 상품에 대한 '매도' 의견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해당 상품에 대한 분석의 시야가 그만큼 좁다는 건 분명하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 100세 시대에 맞춰 연금 상품을 미래의 먹거리로 보고 관련 상품을 개발·판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금융회사들이 대다수다. 연금 상품은 적어도 50년 이상 내다 봐야하는 초장기 금융상품이다. 그런데 한분기 혹은 한달도 안되는 안목을 가진 금융회사들에게 내 노후를 맡길 수 있을까.

사실 메리츠자산운용의 가장 큰 리스크는 장기 투자에 대한 철학이 변하는 것이다. 혹은 이 투자 철학의 구현자인 존 리 대표가 메리츠자산운용을 떠나는 게 리스크다. 최악은 그가 재임중 초심을 잃어버리고 시장 상황에 재빨리 대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메리츠자산운용의 펀드를 환매하고 존 리 대표를 비난해야 하는 건 바로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