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11월 28일 07: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공직사회에 다시 '변양호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뒤 공직사회에 나타난 신조어로, '논란이 있는 사안에 손대지 않는다'는 책임회피와 보신주의 경향을 의미한다.변 전 국장은 해당 사건으로 긴급체포돼 4년 4개월간 142번의 재판과 3번의 영장실질심사, 11번의 선고를 받았고 292일간 수감생활을 했다.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평생 쌓아온 명예를 포함해 많은 것을 잃었다.
최근 변 전 국장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인물이 있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홍 전 본부장은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논란의 표적이 됐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손해를 무릅쓰고 찬성표를 던져 삼성그룹 총수일가에 특혜를 줬다는 게 그가 받고 있는 의혹이다. 최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여론과 정치권 분위기 등을 감안하면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자는 지난해 여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총이 끝난 뒤 한 달쯤 후로 기억한다. 당시 그는 합병에 찬성한 이유에 대해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그룹 투자자산에 대한 장기 수익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날 그는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합병 이후 비전과 경영계획에 대해 논의한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을 22조 원이나 보유하고 있는데, 그룹 총수의 비전과 전략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찬·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기금운용 책임자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해 이 부회장을 만났다"고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얼마 뒤 이 부회장을 만난 일이 세간에 알려져 '비밀 회동' 의혹을 받고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 부회장과 단 둘이 독대한 것이 아니라 기금운용본부 담당자들과 함께 공식적인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과거 SK와 만도 등의 경영진과도 면담을 진행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정말 삼성그룹에 '특혜'를 주려는 불순한 의도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을 결정했는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향후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 특검 등을 통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진실이 드러날 전망이다.
현재 세간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아직 분명치 않은 의혹 단계이나 사실로 여기는 여론이 훨씬 우세하다. 하지만 자산운용업계 전문가들 상당수는 그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으로서 책임의식이 강해서였는지, 정말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너무 용기있게 행동해 논란을 자초했다'는 안타까운 시선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향후 그에 대한 처분이 어떤 식으로 결론날 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 이상 국민연금이 논란이 될 만한 의결권 행사 등에 나서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기금의 수익 보다는 운용인력들의 '보신'이 업무수행에 있어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란 우울한 관측이다.
우리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에 대한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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