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12월 28일 08: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존 리(John Lee)의 귀환'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그는 미국 스커더스티븐스앤드클락(Scudder Stevens and Clark)에서 1991년부터 코리아펀드를 맡아 15년 간 운용하며 숱한 신화를 남겼던 인물이다. 3만원대에 매입한 SK텔레콤과 2만 2000원대에 산 삼성전자는 수 십 배의 차익을 남겼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투자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업계 꼴찌였던 메리츠자산운용을 택한 것부터가 신선했다.그는 소신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운용사의 중심은 주주가 아니고 고객이라며 사옥부터 여의도에서 북촌 반지하로 옮겼다. 소주 마실 돈으로 소주 만드는 회사 주식을 사라고 젊은이들의 주식 투자 필요성을 설파했고, 장기투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힘줘 말했다.
그 중에서도 '원(One)펀드 철학'은 그가 자주 강조했던 내용이다. "한국의 펀드 수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라며 대표펀드인 메리츠코리아만 남기고 나머지 펀드를 없앴다. 트렌드에 따라 동일한 펀드를 우후죽순 내놓는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행태와 정반대였다.
고객들은 그런 그의 철학에 신뢰했고, 화답하듯 돈을 투자했다. 메리츠코리아는 설정 1년 새 대형판매사 없이 1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모았다. 수익률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2014년 메리츠자산운용은 국내 주식형펀드를 운용하는 45개 운용사 중 가장 높은 성과를 냈고, 존리 대표는 취임 1년 만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중소형주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이 제대로 먹혀 들었다.
여세를 몰아 메리츠자산운용은 이듬해 6월 메리츠코리아스몰캡펀드를 내놨다. 이 펀드는 출시 한 달 만에 3000억 원을 단숨에 모았다. 메리츠코리아를 신뢰한 대형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선 덕이 컸다.
올 초에는 메리츠글로벌헬스케어를 내놓은 데 이어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중국본토펀드도 출시했다. 이때부터 존리 대표는 베트남펀드 구상에 돌입하더니 최근 이 펀드를 10년 만기 폐쇄형으로 상장시켰다. 장기적으로는 라오스, 인도네시아, 이란 등 프론티어 시장 펀드도 내놓는다는 목표다.
존리 대표는 펀드를 출시할 때마다 '장기 투자'와 '가치 투자' 철학을 강조했다. 높은 성장성을 구가하고 있는 기업이나 국가에 투자하기 때문에 묻어두면 나중에 큰 돈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마치 90년대 코리아펀드처럼 말이다.
그러나 스몰캡과 글로벌헬스케어, 중국본토, 베트남은 모두 최근 펀드 시장에서 유행을 타고 인기를 끌었던 '키워드'들이다. 현지에 사무소를 두고 리서치를 이어 온 다른 자산운용사들처럼 메리츠자산운용이 장기간 투자국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아니다.
새 펀드가 연이어 출시되는 동안 간판펀드인 메리츠코리아는 고꾸라졌다. 운용규모는 1조 원으로 대폭 불어났지만 올해 수익률은 -24%로 동종 유형 중 최저 수준이다. 이쯤되니 "그의 투자 철학이 마케팅을 위한 수사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시장의 눈초리가 합리적인 비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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