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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희망 '컴백홈(Come back home)' [WM라운지]

이윤학 100세시대연구소 소장공개 2017-03-23 08:39:54

이 기사는 2017년 03월 20일 08: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1990년대 초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정규앨범이었던 4집의 타이틀곡 <컴백 홈>의 가사다. 당시는 세대간 갈등으로 가출청소년이 너무 많아 사회문제가 되던 그런 시절이었다.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가출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등 사회적 반향이 컸다. 집을 나온 청소년들의 마음을 노래가 보듬어 주고 달래주었던 것이다.

그 후로 20년이 지난 지금, 이젠 노인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노인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따뜻한 보금자리인 집으로, 요양원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버드대학교 의대 교수인 아툴 가완디는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서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또 언제부턴가 나이가 들어 죽어가는 과정은 의학적 경험으로 변질되면서 의료전문가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1945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1980년대 이르러 이 비율은 17%로 크게 줄었다. 결국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노화와 죽음'은 집이 아닌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겪는 일이 된 셈이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고령자들의 상당수는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삶의 마지막 날들을 보낸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닌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부터 단절된 채 통제되고 획일적인 삶을 강요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현대적 요양원의 시초는 1950년대 미국에서 병실 부족으로 인해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환자들을 수용하는 별도의 시설이었다. 나이가 들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병실을 비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요양원의 미국식 이름이 'nursing home'이다.

그런데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n)은 요양원을 감옥과 군대에 비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같은 장소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똑같은 통제를 받는다. 둘째 모두 같은 대우를 받으며 같은 일을 하도록 요구 받는다. 셋째 일상이 엄격한 시간표에 의해 진행된다. 넷째 일상의 활동들이 공식목적에 부합되는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꽤 극단적인 비유로 보이지만, 아침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 세끼 같은 종류의 식사를 하고 하루 종일 같은 일상을 보내고 TV도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는 점에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바로 여기에 소위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 문제가 내재돼 있다.

인생 후반부 그것도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가족과 가장 친숙한 공간인 집에서 늘 하던 대로 안정감 있는 삶을 보내는 것, 이것이 고령자들의 희망이다. 다만 환자라는 이유 등으로 그들의 삶에 대한 결정권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20세기 들어와서 노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 같이 집에서 사는, 가장 전형적이고 당연한 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들의 60%가 자녀와 같이 살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그 비율은 25%로 떨어졌다.

이런 현상은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80세이상 노인의 10%만이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니라도 65세이상 노인이 자녀와 같이 사는 비율이 최근 20년만에 절반 수준으로 크게 떨어져 28%에 불과하다.

그래서 20세기 중반부터 소위 '거리를 둔 친밀감(intimacy at a distance)'이 그럴듯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같이 살지 않아도 친밀감을 느끼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자녀들이 부모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50 mile, 1 hour' 원칙이 대체로 관찰되고 있다. 50마일(80km) 이내의 거리로, 자동차로 이동하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사는 부모와 자녀의 비율이 59%나 됐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같이 살기보다는 '스프가 식지 않을 정도'로 가깝게 살면 가장 좋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든 부모를 혼자 살기 내버려두는 것을 전통적으로 부끄럽게 여기는 곳도 많다. 100세이상 초장수 고령자가 많은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의 경우, 노인을 위한 장기 요양시설이 아예 없다. 그리고 자식들은 부모들이 요양시설로 들어간다면 '가족의 수치'로 여긴다. 사르데냐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을 키워준 부모와 조부모들에게 '애정'이라는 빚을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노인에게 주며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가족과 함께 집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또 그렇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미국은 다양한 형태의 실버타운과 노인전용병원,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시도를 적어도 50년 전부터 해오고 있다. 일부는 본인과 가족의 만족도가 높은 곳도 있지만, 경제적인 부담 등 실질적인 요소들까지 모두 고려하면 대체로 만족도가 낮다. 특히 노인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결국 미국에서도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컴백 홈'(come back home) 혹은 '백 투 홈'(back to home)의 트렌드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자신의 집에서 노후를 보낸다는 것은 가족과 같이 집에 산다는 점, 자녀와 같이 살지 않더라도 자기집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나이가 많은 고령자들에게 가장 큰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 요소다.

내 삶의 둥지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산다는 것은 극도로 높은 삶의 편의성을 보장한다. 세면장에 치약은 어디에 있는지, 신발장 몇번째 칸에 어떤 구두가 있는지, 어제 먹던 맛있는 음식이 냉장고 어느 칸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고령자 자신들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가까운 이웃, 늘 만나던 사람, 자주 다니던 동네의 가게, 반갑게 만나는 복지관 친구 등 나이든 노인에게 지역네트워크는 중요한 사회생활이자 삶의 활력소이다.

그런데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면 삶의 안정감과 편의성, 사회적 네트워크를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노인들이 그곳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다. 얼마 전에 복지관에서 만난 두 할머니가 나눈 대화가 참 가슴 아팠다.

그들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우리는 절대로 요양원에는 가지 말자', '요양원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현실이다. 아툴 가완디의 말처럼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을 잃는 것을 두려워 한다.

고령자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집에서 보내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먼저 당연한 이야기지만 집이 있어야 한다. 특히 자신 소유의 집이 가장 좋다. 자녀의 집도 좋지만, 내 집이 더 좋다.

노후의 삶에 중요한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노후준비에 가장 기본은 '집 한 채는 있는 것이 좋다'는 원칙이다. 삶의 안정감은 물론이고, 노후생활비가 부족하면 주택연금 등으로 활용이 가능하므로 사실상 경제적인 마지막 보루가 집이다.

두 번째는 안정적인 노후 소득이 있어야 한다. 노후 소득의 핵심은 연금이다. 가장 기본적인 국민연금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노후생활비가 부족하다. 퇴직연금도 가능하면 일시금이 아니라 연금형태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노후의 경제생활이 안정된다.

특히 개인연금이 중요하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합해도 적정노후생활비 237만원을(50대이상, 2인가구기준) 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개인연금이 중요하다. 개인연금으로 부족한 노후생활비를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은 반강제적으로 가입하는 것이지만, 개인연금은 본인의사로 가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개인연금을 소득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30대부터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내 집에서 살면서 사회적 네트워크속에서 자존감있는 노후생활이 가능하다.

세 번째는 IOT, 유니버셜 디자인과 같은 하우스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제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번 산업혁명의 핵심은 연결(네트워크)과 융합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 퀀텀컴퓨팅, 로봇공학, 나노, 바이오 등등이 서로 연결되고 융합되어 모바일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바로 이 제4차 산업혁명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집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병원이나 요양원은 의료시설이 집중된 곳이지만, 살고 있는 집은 그야말로 집일 뿐이다. 그런데 기술의 발달로 집이 사실상 의료시설화 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인터넷이 발달되면서 많은 전자기기들이 연결이 되어 평상시에도 혈압이나 맥박 등 건강체크를 원격으로 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은 집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생활의 세밀하고도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로봇공학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의 손발이 되어줄 것이며, 자율주행차가 일상화되면 운전을 직접하지 않아도 원거리 이동도 가능하다. 인공지능은 노인들의 말벗이 될 수 도 있고, 낙상 등 비상시에는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원래 유니버셜 디자인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도록 문턱을 없애고, 문을 넓히고 경사로 출입구를 확보해야 한다. 낙상방지용 손잡이를 화장실뿐 아니라 침실이나 이동통로 설치하는 등 고령친화적 하우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네 번째는 이런 모든 것이 쳬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복지정책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의사나 간호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고령자 돌보미서비스 등을 보다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지원해야 한다. 집에서 건강체크나 원격진료 등이 가능하게 사물인터넷 등이 작동하도록 정책적으로 인프라투자를 해야 한다. 유니버셜디자인의 의무화 등 제도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주택연금의 혜택을 많은 고령자가 누릴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더 필요하고, 개인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더욱 확대하는 등 노후에 집에서도 연금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치명적인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는 것이 불가피하겠지만,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하고 대화가 가능하다면, 이젠 집에서 노후의 마지막을 보내야 한다. 경제적인 준비를 착실히 하고, 하우스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20년전엔 집 나간 청소년들이 '컴백홈'을 했지만, 이젠 고령자들이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때다. 내 집이 가장 편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You must come back home…



이윤학 NH투자증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일보, 매경, 한경,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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