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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가 되어버린 중산층 [WM라운지]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공개 2016-12-02 13:22:15

이 기사는 2016년 11월 30일 13: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난 꿈이 있었죠 /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 간직했던 꿈'
('거위의 꿈' 중에서)

대한민국 중산층은 거위다. 거위는 날지 못한다. 그러나 꿈은 가지고 있다. 버려지고 남루해도 가슴속 깊이 간직한 보물 같은 꿈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보통사람으로 산다는 것, 평범하게 산다는 것, 중간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보통이 무엇인지, 평범이 무엇인지, 중간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중산층(中産層)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았다. 오히려 상류층과 대비하여 중류층(中流層)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왔다. 중류층의 사전적 의미는 '신분이나 생활수준이 중간 정도가 되는 사회계층'으로 사회문화적 개념까지 함축되어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산층은 경제적인 개념으로 자산수준이 중간쯤 되는 계층이고, 중류층은 영위하고 있는 생활·문화수준까지 중간쯤 되는 계층이다.

서구사회에서도 사실 중산층과 정확하게 매칭되는 개념이 없다. 'Middle Class'라고 통칭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굳이 중산층이라고 표현하자면 'Middle Economic Class' 정도가 맞을 듯싶지만, 여전히 서구사회에선 중류층과 중산층을 명확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중산층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에서는 자기 자신이 중산층 사회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정신상태'가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주장한 반면 세계은행은 '글로벌 중산층은 세계적 생산품을 소비하고, 국제수준의 교육을 원하는 계층'이라고 정의하였다. 한 쪽에선 소속감이나 마음가짐을 중산층의 지표로 본 반면, 다른 쪽에선 상품과 서비스(교육 등)의 소비에 대한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고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중산층의 기준은 사회문화적 개념을 뺀 경제적 관점의 중산층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소득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나누는 방법이다. 사회적 지위나 문화적 향유를 포함하여 사용하면 좋지만, 주관적인 측면이 크고, 나라별 상황에 따라 괴리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계량적이고 객관적인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나누는 OECD방식을 우리나라 통계청에서도 따르고 있다.

◇중류층이라 쓰고, 중산층이라고 읽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중류층과 중산층을 혼동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경제적인 문제가 우리 삶을 더 강하게 지배하면서부터일 것이다. 문제는 용어를 섞어 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 것이 문제이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중산층 10명 중 4명만이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중산층 중에 나머지 6명은 자신이 빈곤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이 중산층을 이야기 하면서 중류층, 아니 그 이상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산층에 대한 OECD의 정의는 '중위소득 50~150%에 해당하는 가구'이다. 즉 우리나라 국민을 소득기준으로 줄을 세웠을 때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중위소득)을 100으로 보고 그것의 50~150% 사이에 있는 계층이 중산층이다. 예를 들어 가구수가 100가구가 있다면 소득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중간이 되는, 즉 50번째 가구의 소득이 중위소득이 되고, 그것의 50% 수준을 버는 가구부터 150%를 버는 가구까지가 중산층이 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50%미만이면 빈곤층이 되는 것이며, 150% 이상은 고소득층에 속하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중산층은 전체인구의 65% 정도이니, 5명 중 3명 이상이 중산층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 다양한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인데 무슨 중산층이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고, 매일 전철로 출퇴근하며 근근이 아이들 학원비 내기도 바쁜데 내가 무슨 중산층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중산층은 어디까지나 수치로 정의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일반화되고 계량적인 경제용어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중류층 혹은 고소득층을 중산층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류층이라 쓰고, 중산층이라고 읽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거위를 이야기하면서 기러기를 생각하기 때문일까?

대한민국 중산층은 거위다. 거위는 날지 못한다. 그런데 거위는 원래 기러기였다. 기원전 3000년 이집트 피라미드 고분벽화에서도 사육하는 그림이 나온다고 하니,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고, 그래서 날지 못하게 된 것이다. 거위의 운명 속에는 중산층의 눈물과 희망이 함께 녹아져 있다. 헛된 꿈은 독이라고.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서인가? 거위가 수천 년 전 기러기였을 때를 생각하며 끝없이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치 중산층이 사피엔스 시절을 생각하며 꿈을 키우는 것처럼……

중산층이 생각하는 '그들만의' 중산층은 사실 중류층 이상이다. 자산개념으로 따져보더라도 고소득층 수준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은 왜 보나'이다. 실체는 달인데, 손가락 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슬플 수 밖에 없다. 거위를 이야기하면서 기러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중산층, 그들이 생각하는 순자산만 보더라도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순자산(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중산층일까를 묻는 질문에 평균적으로 6억 4000만원 정도는 있어야 된다고 답한 그들이지만, 실제 우리나라 중산층의 보유 순자산은 1억 8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3배가 훌쩍 넘는 차이가 난다. 중산층인 그들이 실제 가지고 있는 자산보다 3.5배 이상이 더 있어야 그들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6억 4000만원, 이 정도 순자산이면 우리나라 상위 10%안에 들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실제 중산층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은 어느 계층에 속하십니까"라고. 그랬더니 놀랍게도 중산층 10명 중에 4명만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했다(43%). 나머지 6명은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젊을수록, 미혼일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가족 수가 적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30대의 64%가, 미혼의 67%가, 고졸의 66%가, 1인가구의 82%가 하위 중산층의 75%가 자신을 중산층이 아닌 빈곤층으로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 기준으로 중산층인데, 정작 자신의 눈은 고소득층에 꽂혀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낮춰보는 현상은 고소득층에서도 잘 나타나서, 본인이 고소득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1%에 불과하였으며, 심지어 30%는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니 거위를 이야기하면서 기러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자조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다,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 끝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위에겐 꿈이 있다. 그리고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는 용기도 있다. 이제 그 꿈을 믿고, 거위를 지켜보자. 기러기처럼 날 지도 모르니…


이윤학 NH투자증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일보, 매경, 한경,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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