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잊은' 父 만난 신동빈, 눈물의 필담 '거동불편' 신격호 회장과 10분간 쪽지 대화..퇴장 후 눈시울 붉혀
박창현 기자/ 노아름 기자공개 2017-03-21 08:19:48
이 기사는 2017년 03월 20일 19: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심려끼쳐서 죄송합니다.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재판정에 들어가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어깨는 유독 무거워보였다. 총수일가가 모두 소환 된 것에 대해 그룹 회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듯 유일하게 포토라인 앞에서 입을 열었다. 이후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법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롯데오너 일가가 총출동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312호 법정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함께 재판을 받는 황각규 롯데경영혁신실장과 소진세 사회공헌위원장 등 경영진이 먼저 피고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재판 시간이 다가오자 구속 상태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재판정에 들어왔다. 곧 신격호 총괄회장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 씨가 자리했다. 재판 시작 10여 분 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3분 후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뒤따라 들어왔다.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형제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둘 사이는 변호인들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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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재판관들이 개정을 선언했다. 하지만 여전히 신격호 총괄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변호인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20여 분 늦는다고 전했다.
먼저 검찰의 모두 발언이 시작됐다. 검찰은 롯데 오너일가의 죄목과 범죄 내용을 상세히 읽어 내려갔다. 공짜 급여를 지급해 여러 계열사의 돈을 횡령한 죄, 영화 매점 운영권을 헐값에 넘겨 롯데쇼핑에 손해를 끼친 죄, 조세를 포탈한 죄, 비상장 주식을 고가에 매입하도록 지시해 배임한 죄, 적자 계열사에 불법 지원을 한 죄 등 크게 4가지 죄목을 오너 일가에 적용했다.
검찰의 발언이 다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격호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꾸부정한 자세로 휠체어에 앉아있는 신 총괄회장의 모습은 나이 아흔의 여느 노인과 다르지 않았다. 팔에 들린 지팡이마저 버거워보였다.
한 때 롯데그룹 더나아가 대한민국 재계를 호령했던 기백과 총기는 찾기 어려웠다. 재판장에서 보인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재판부의 질문에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생년월인과 주소조차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결국 변호인들까지 나서 일본어로 바꿔 질문을 했지만 되려 역정을 내기도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신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변호인과 자리를 바꿔 신 총괄회장 옆으로 다가갔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은 배제하고 법정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재판 진행 와중에도 신동빈 회장은 계속 신 총괄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법정 마이크 너머로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일본어가 간간히 들렸다.
뜻이 잘 전달되지 않은지 신 회장은 볼펜과 종이를 찾았다. 곧 두 부자는 필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칸코쿠(한국)' 등 일본어도 들렸다. 현재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 듯 했다.
같은 질문을 계속하는지 신 회장은 볼펜에서 손을 땠다가 잡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필담은 10여 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흩으러짐 없이 옆자리에 딱 붙어 진중하게 아버지를 대했다.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우려되는지 간간히 보좌진들에게 눈길을 주기도 했다.
재판부는 그 즈음 신 회장에게 "아버지와 필담이 되는 거 같다"며 대화 내용을 물었다. 이 때 변호인이 관여해 신 총괄회장 입장을 대신 전했다. 변호인은 "신 총괄회장이 여기가 어디고, 누가 나를 기소했느냐고 물었다"고 대답했다.
필담 후 신 총괄회장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롯데는 내가 만든 회사다. 누가 나를 기소하나." 노기가 풀리지 않았는지 마이크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변호인들은 곧 재판관들에게 검찰 기소에 대한 입장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재판부도 이를 허락했다.
오후 2시 52분. 법정에 들어선지 30분도 안돼 신 총괄회장의 휠체어는 다시금 법정 출입문을 향했다. 신 총괄회장은 할 말이 더 있는지 자리 떠나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아 법정을 떠났다.
신 총괄회장의 눈도 법정 출입문 근처에 한 동안 머물렀다. 소회가 깊은 듯 간간히 법정 천장을 쳐다봤다. 이내 아버지의 쓸쓸한 퇴장에 둘째 아들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뒤에서 하얀색 수의를 입고 같이 울고 있는 누이도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동안 둘은 손수건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남은 사람들은 곧 남은 사람들의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신 총괄회장은 준비된 차를 타고 롯데호텔 집무실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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