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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도 높아진 한국물, 현격한 주문량 감소 [Market Watch]ICMA룰 도입, 유효 수요만 주문…지정학적 리스크도 한국물 수요 제한

이길용 기자공개 2017-04-18 06:55:00

이 기사는 2017년 04월 14일 16: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물(Korean Paper·KP) 시장의 호황은 끝났다. 한국물은 타이트한 금리 책정으로 피로도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꾸준히 신용도가 개선되면서 이를 상쇄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한국물이 비싸다고 인식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주문량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다.

게다가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룰이 도입되면서 실제로 받아갈 물량만 주문을 넣는 새로운 관행이 정착돼 허수 수요가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물을 받아가기 위해 주문량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서 연초부터 저조한 한국물 주문량은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북한과 관련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한국물 수요를 더욱 제한하는 양상이다.

◇ 지난해 한국물 주문 폭발…피로도 극심, ICMA룰 도입으로 오더 줄어

한국물은 지난해 초호황을 누렸다. 2015년 말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a2(안정적)로 한 노치 상향했고 지난해 8월에는 S&P가 AA(안정적)로 신용등급을 올렸다. 미국은 예상과 달리 금리 인상을 자제하면서 신용도가 개선된 한국물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목을 맸다.

지난해에는 대부분의 한국물이 발행 예정 규모의 4~5배 이상의 주문을 받는 경우가 흔히 발생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기아자동차가 발행한 글로벌본드(RegS/144a)에서 발생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4월 5년물과 10년물로 나눠 각각 4억 달러와 3억 달러를 조달했다. 이 때 최종 주문 규모가 각각 45억 달러와 52억 달러에 달했다. 국가 신용도가 등급에 반영되지 않은 기아자동차의 경우 우량한 신용도에 높은 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주문량을 극대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문이 폭발하면서 한국물은 지난해 타이트한 금리 결정으로 투자자들의 피로도가 상당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10년물의 경우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5년물보다 최종 가산금리(스프레드)가 낮은 경우도 있었다. 만기별 수익률을 나타내는 일드커브(Yield-Curve)가 만기가 길어질수록 낮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말 미국이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면서 피로도가 높아진 한국물의 수요가 줄어드는 모습이 연출됐다. 연초 정부가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는 10억 달러 발행에 주문이 14억 달러에 그쳤다. 이어 발행한 수출입은행의 15억 달러 글로벌본드에도 주문량은 28억 달러였다. 발행에는 전혀 무리가 없으나 지난해 수출입은행이 두 차례 발행한 글로벌본드에 50억 달러 이상이 몰렸던 것과 비교하면 주문량 감소가 눈에 띤다.

게다가 ICMA룰이 도입되면서 실제로 받아가는 물량만 주문하는 모범기준이 확립됐다. 지난해에는 한국물을 서로 받아가기 위해 허수 주문이 난무했지만 올해부터는 이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는 후문이다.

국제자본시장협회는 가격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제로 받아갈 물량만 주문하도록 룰을 정했다. 이를 어기는 기관에는 페널티를 줄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웠는데 연초부터 이런 관행이 자리를 빠르게 잡았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베스트 프랙티스(모범 관행)로 자리잡은 룰을 최대한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글로벌 IB들의 신디케이션도 실제 받아갈 물량만 주문하도록 투자자들을 유도하고 있어 ICMA룰 도입의 효과가 한국물에도 바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북한 리스크 점증, 투자자들 부정적 반응 표출 시작

한국물 시장에서는 사실상 북한에 대한 리스크는 잊고 있었다. 북한과 관련된 이슈가 발생해도 한국물 신용도에는 영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북한 이슈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한국물을 담아왔다. 지난해 1월 산업은행이 북한 핵실험 당일 프라이싱(pricing)을 실시했지만 무리 없이 자금을 모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의 위기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도움 없이도 독자적으로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과 관련된 위기를 근거로 한국물 투자를 고려했다가 보이콧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4월 들어 프라이싱을 실시했던 한국물 발행사들의 주문 실적은 저조했다. 3억 달러 유로본드를 발행한 한국남동발전은 8억 달러의 주문을 받는데 그쳤으며 4억 달러 글로벌본드를 찍은 한국도로공사는 6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에서 주문을 마감했다. 3월 말 투자자 모집을 선언(announce)했던 KEB하나은행도 5억 달러 글로벌본드를 발행하면서 받아낸 수요가 8억 달러였다. 한국물 신용도가 우량해 발행 물량을 채우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지난해 수준의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딜을 할 때마다 한국물이 역대 최저 금리를 갱신할 정도로 인기였다"며 "한국물 호황이 꺾인 양상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어 한국물 발행사들이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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