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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유력 '로드맵', 최순실 암초로 '폐기' JY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 '최적안' 포기… 멀어진 승계 완성

정호창 기자공개 2017-05-08 13:37:24

이 기사는 2017년 05월 02일 07: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 포기를 선언하면서 삼성그룹은 그동안 시장은 물론 내부에서도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검토되던 지배구조 재편 '로드맵'을 잃게 됐다. 이로써 지난 3년여 간 진행해 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승계 프로그램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란 기착지에서 항해를 멈추게 됐다.

삼성 '이재용호(號)'의 출항과 표류 모두 삼성 내부에서 결코 예상치 못했던 돌발 사태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총수이자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유고가 준비가 덜 된 '이재용호'의 출항을 앞당겼고, 항해 중 만난 '최순실 사태'라는 대형 암초는 결국 중도에 닻을 내리게 만들었다.

◇삼성 격랑 속으로 밀어넣은 '이건희 와병'

2014년 5월 10일 밤,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심각한 호흡곤란 증상을 일으킨 이 회장은 즉시 인근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고 11일 새벽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총수 일가는 물론 삼성그룹 최고경영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였다. 최고 경영권자의 갑작스런 유고 상황을 맞게 된 삼성그룹은 즉각 이재용 부회장을 구심점에 세우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다.

겉으론 침착한 모습을 보였으나 삼성 수뇌부는 당황했다. 아직 이 부회장으로의 승계 준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회장의 유고가 발생해 '시간과의 싸움'에서 져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위기를 맞게 된 탓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SDS 지분을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룹 핵심 계열사이자 지배구조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배력이 미약했다. 삼성전자 지분율은 0.6%, 삼성생명 지배력은 고작 0.06%에 그쳤다.

◇삼성전자 지배력 확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숨통

삼성그룹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우선 삼성SDS와 제일모직 증시 입성을 추진해 2014년 11월과 12월 각각 상장시켰다. 이 부회장의 핵심 자산인 두 회사 지분 가치는 상장 후 주가의 고공행진에 힘입어 천문학적 액수로 불어났다.

삼성그룹은 다음 수순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했다. 삼성그룹은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 창출을 목적으로 내세우며 승계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재계와 시장에선 이 부회장의 취약한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내포된 합병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25%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이를 통해 본인이 0.6% 지분 밖에 보유하지 못한 삼성전자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통합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55%를 갖고 있다. 통합 삼성물산 출범을 통해 삼성전자 지배력 11.8%가 이 부회장 손에 들어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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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었던 엘리엇,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 공식 제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이 부회장 중심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일단 중간 기착지에 안착했다. 하지만 '지배구조 완성'이란 최종 목적지까진 여전히 먼 길이 남았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보험업 규정 강화 추세로 언제 매각해야 할 지 모를 불안한 상태였고, 금산분리 이슈도 삼성을 괴롭히는 난제였다.

두 문제를 풀기 위해선 삼성전자 분할 뒤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통한 지주체제 수립과 금융 중간지주 제도 허용 등이 필요했으나, 삼성그룹이 스스로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오래 전부터 검토해 온 방안들이나 주주들에게 내세울 명분, 국민과 정치권을 설득할 당위성 등이 마땅치 않았다.

삼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곳은 삼성물산 합병 추진 당시 적대적 관계를 형성한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매니지먼트였다. 삼성물산과의 의결권 경쟁, 법정공방에서 완패한 엘리엇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주주 자격으로 깜짝 등장해 회사 분할과 지주사 전환을 삼성전자 이사회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삼성전자는 엘리엇의 제안을 받은 후 두 달 정도가 지난 작년 11월 말 이사회를 열고 지주사 전환 검토를 공식 선언했다. 삼성전자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면 13% 가량 보유한 자사주를 활용해 총수 일가를 포함해 18% 수준에 그치고 있는 삼성그룹의 전자 지배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기에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검토 착수를 사실상 지주사 전환 추진으로 받아들였다.

◇이재용號 멈춘 최순실 사태, 지배력 강화 '최적 카드' 무위로

순항할 것 같던 삼성의 지배구조 재편 작업을 멈춘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 우리 사회를 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였다. 당초 정치권의 문제로 출발했던 이 '권력형 게이트'는 곧 삼성그룹과 최순실,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뇌물 사건으로 확대됐고 종국엔 온 나라를 집어 삼키는 초대형 태풍이 됐다.

삼성은 사력을 다해 항변했으나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17일 삼성그룹 총수로선 처음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비운을 맞았다.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잃은 삼성은 새출발을 다짐하며 60년 가까이 총수 일가를 보좌해 온 미래전략실을 2월 말 전격 해체했다.

총수와 그룹 컨트럴타워를 모두 잃은 삼성전자는 4월 27일 이사회를 열고 지주사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검토 착수 발표 후 5개월만에 내린 결론이다.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수반되는 여러 문제와 사업 및 주가 부담 등을 포기 이유로 제시했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이 같은 현실적 어려움 외에 '영어의 몸'이 된 이 부회장을 구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 담긴 결정이란 해석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를 촉발시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당한 조치가 아니라는 점과 향후에도 같은 목적의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외에 각인시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이 부회장 재판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하기 위해 내린 결정 아니냐는 해석이다.

배경과 이유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삼성이 지배구조 재편을 위해 사용할 수 있던 '최적의 카드'가 이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3년간 긴 항해를 해 왔지만 여전히 목적지까지 갈 길은 먼데, 항로를 새로 그려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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