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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피해아동을 위한 신탁의 역할 [WM라운지]

배정식 KEB하나은행 신탁부 리빙트러스트센터장공개 2018-05-08 08:40:30

이 기사는 2018년 05월 03일 09: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미성년자인 A양의 사례

A양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 자식을 낳은 후 이혼한 엄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양육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활능력도 부족했던 엄마는 어느 날 한 남자와 살게 됐다며 A양을 함께 데려갔다. 그러나 동생이 생기자 A양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엄마로부터는 구박을,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는 성적 학대로 심한 고통을 받게 됐다.

상황을 눈치챈 학교 선생님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으로 A양은 보호기관에서 잠시 생활하게 됐다. 결국 엄마의 남자친구는 구속됐고, 정서적 학대를 함께 하던 엄마는 한차례 경찰 조사 이후 잠적했다. 문제는 구속된 남자가 피해보상금으로 법원에 3000만원을 공탁했는데 잠적했던 엄마가 친권자로서 그 돈을 찾겠다고 지급방법을 문의한 것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우리는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된다. 제대로된 양육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학대까지 했던 엄마가 친권자라는 이름으로 돈을 찾아가도록 방관해야하는 것일까.

# 미성년자 학대 현황

보건복지부 산하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자료를 보면 우리사회의 아동학대 현황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신고되지 않은 사건도 있겠으나, 공식적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되는 신고건수는 2012년 1만943건에서 2016년 2만9671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동학대 의심이 추정되는 건도 같은 기간 6403건에서 2만5878건으로 약 4배 증가했다.

2016년 기준 아동학대 피해로 확정된 1만8700건의 학대행위자는 대부분 부모에 의해 발생된다. 친부모가 76%이고 계부·계모까지 포함하면 약 80.5%가 자녀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는 부모인 것이다.

아동복지전문가들은 최근 학대 형태를 보면 과거 사회빈곤층에서 발생하던 일방적 아동폭행과는 원인이 다르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인권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늘어나 아동학대를 고발하는 건수가 증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대적 빈부격차의 심화, 경제적 경쟁 시스템 속에서 스트레스, 다문화 가정 부부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가족의 해체 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 아내와 이혼 후 전처에 대한 복수심을 친자녀에게 분풀이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신체적 학대에서 지금은 신체학대 뿐 아니라 방임 혹은 정서적·성적 학대 등 복합적인 학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 아동학대에 대한 법적 개선 내용

우리는 약 4~5년 전에 발생한 울산계모사건과 칠곡계모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학대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법적 한계를 인식하고, 법적 보강이 이뤄지게 됐다.

첫번째는 2014년 9월29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됐다는 점이다. 응급조치를 통해 아동을 보호하거나, 보호자가 아동을 보호할 의지나 능력이 없을 경우 피해아동에 보호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특히 학대를 통해 아동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아동학대치사)와 아동을 크게 다치게 한 죄(아동학대중상해)를 구분해 물을 수 있게 됐다.

둘째는 부모의 친권 남용과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친권을 일시 정지하거나 일부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과 가사소송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은 2016년 10월 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가정법원이 부모를 대신해 특정한 행위에 대해 동의만을 해 줄 수도 있게 했다. 아이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부모가 종교적 신념 등으로 수혈이나 수술을 거부할 경우 친권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가정법원이 '친권자의 동의에 갈음하는 재판'을 통해 수술 등을 받게 할 수 있다.

# A양을 위한 법원의 결정

당시 울산계모사건을 보며 많은 이들이 법적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적 지원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부모·자녀간 관계를 극단적으로 단절시키는 친권상실제도에서 시기적으로 또는 일부 내용에 한해 탄력적으로 친권을 제한하면 가족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자녀의 복리를 지켜줄 수 있다.

A양을 위해 생모의 애인이 법원에 맡긴 공탁금은 엄마가 친권자라는 이유로 찾아가지 못하도록 조치됐다. 아동학대처벌법과 민법의 관련 법 조항을 근거로 법원의 판단에 의해 친권자의 의사에 갈음하는 보호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 A양을 위한 신탁의 작은 지원

A양을 위한 공탁금은 친권자인 생모라 하더라도 일단 법원의 결정으로 찾지 못하도록 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재산을 보호하고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런 경우 신탁은 A양을 위해 작지만 강력한 보호 지원을 해 줄 수 있다. 인출된 공탁금은 친척 등의 개인보다는 신탁계약을 통해 A양이 성년자가 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우리는 통상 유언을 대신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또는 유언신탁을 생각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신탁제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신탁은 작지만 소중한 재산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서울대 금융법무과정(신탁법)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금융투자 전공10기) 졸업
[저서]'신탁 상속'(재산 분쟁 없는 희망 상속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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