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5월 09일 07시5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한진해운의 파산은 많은 뒷말을 남겼다. 정치 권력에 잘못 걸리면 국적 선사도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오래 전 기억을 일깨웠다. 정치 논리 앞에선 수십 년간 축적된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마저도 붕괴될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그렇게 국내 1위, 세계 7위의 국적 선사가 설립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구나 한진해운의 파산은 해운업계의 예상을 완전히 깼다.
해운업계는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을 흡수합병할 것으로 봤다. 글로벌 해운업계가 합병이나 통합 운영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만큼 우리도 합병을 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마침 독일, 중국, 일본 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국가 1선사' 체제로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 당국의 선택은 달랐다. 합병도 아니고 경쟁력 있는 선사였던 한진해운 대신 현대상선을 살리기로 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한진해운의 파산은 한진그룹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진해운은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輸送報國)의 꿈이 담긴 기업이다. 조중훈 회장은 해방 직후 한진상사를 창업하면서 사명으로 한진을 택했다. 해방 이후 억눌렸던 '한민족의 전진(韓進)'으로 사업보국의 뜻을 펼치려 했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한진그룹에서 독립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조양호 회장은 독립을 말렸다. 부침이 심한 해운경기의 특성상 그룹의 보호막을 벗어나는 순간 언제 어떤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다는 우려였다. 한진그룹을 육해공(陸海空) 수송제국으로 일군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도 컸다.
조중훈 회장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것도 '사업은 예술'이라는 기업철학의 발로였다. "국적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보는 게 소망"이라는 대통령의 꿈을 거절할 수 없었고,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만인에게 유익한 사업이라면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게 기업인의 보람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한항공은 단순한 민항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가 대표 항공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아시아나항공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대한항공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다. 항공 업황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에도 직원과 주주, 이해관계자들이 오너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창업주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킨 신용을 후대가 저버린 결과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잇단 제보와 촛불집회는 징후적이다. 위기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기점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대한항공을 보면서 한진해운의 데자뷔(기시감)가 느껴진다. 서둘러 진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대한항공도 한진해운처럼 파국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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